숨어 있는 집

뭐 드실라우?

濟 雲 堂 2007. 8. 22. 01:35

1999년 12월 31일

세상은 온통 20세기 마지막 날에 대한

준엄한 문구로 도배하고 있었다

그 때에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점보형 비행기에 승객들은 고작 4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승객들의 겁 먹은 모습의 여진이 내게도 느껴지는 이륙 시간

수 시간 동안 날아가야할 목적지에 대한 꿈이 이뤄지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기원 소리가 우스개로 들려왔고

나는 일찌감치 네개의 좌석 손잡이를 모두 올려놓고 잠을 청할 준빌 하고 있었다

내 평생에 이렇게 호사스런 좌석을 차지할 수나 있었을까?

얼마 후 식사가 나오자 한 개 더 주문해서 먹었다

기왕이면 하나 더 주면 어떻겠느냐면서 청했다

또 하나 달라고 했다. 안 된다고 승무원 아가씨가 거절한다

아가씨나 나나 이 비행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수 백의 좌석이 비었고 그들 식사까지 준비했었을 이 비행긴데

남는 게 분명 있질 않느냐 게다가 나는 며칠 간 노동을 많이 해서

심신이 피곤하고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이 일지 않는다

그러니 남는 음식 버리지 말고 달라 했더니

잘 생기고 멋진 스튜어드를 부르더니 뭔가 속닥이는 것이었다

잠시 따라 오라는 것

그래서 혹시나 하고 어깨에 잔뜩 힘주고 따라 갔더니

비즈니스 석으로 안내를 하더니만 음식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먹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고 있던 인도 아가씨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999년 12월 31일 밤의 일이었다

 

전국이 어느 특정적인 날짜에 맞춰 모종의 D-day를 꾸며대는 요즘

수상하다 못해 께름칙한 작태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개발이고 발전이고 일등국가를 향해 뭘뭘 하자고

현재를 때려부수고 내일을 짓자고 갖은 구호와 청사진을 내 놓고 있다

몸살도 더러운 몸살이다 돈과 삶의 질 운운하며

포크레인 동원하고 불도져 끌어 오고 땅다지기 차 내 와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아양에 협박에 윽박까지 질러가면서

땅을 갈아 엎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존과 보전은 이미 형식을 떠났고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랄 수 있는 합의과 협력 그리고 타협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배후의 그림자 놀이를 통해 이간질만이 상통하게  되었다

따라서 소위 약자라 일컬어지는 대다수의 주민들은 얼마 안 되는 돈을 거머쥐고

정든 곳을 떠나게 되었고 이는 명약관화한 빈곤의 악순환의 물꼬를 트게 되는

여지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랬었기 때문에...

 

맘이 착잡해 시내 주변부를 주유하다가

수상한 시절에 느꼈던 웬지 모를 허기를 채우고자 어느 식당엘 들어가게 된다

메뉴가 적혀 있는 벽을 쳐다보라고 주인장이 냅다 소리를 지른다

그 것도 반은 친절 또는 반말에 오묘한 즐거움까지 깃든

낡고 투박한 목소리로 말이다. 

 

ㅋ  ㅋ   ㅋ   ㅋ   ㅋ ................

뭐 드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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