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집

여선교사 기숙사

濟 雲 堂 2007. 8. 6. 01:12

사람의 길과 물의 길이

한번 몸을 틀어 손을 뻗기 시작하면

천년 동안 멈추지 않고 흐른다 했다

 

논어에 천장지구(天長地久)란 말도

세상을 빗대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요즘은

변화와 개발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가

도시 곳곳에 범람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도심이 돼버렸지만

내가 사는 동네와 그 인근 마을들이

한창 이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방송과 신문 지면을 통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개발의 부작용과 우려들은 비단

미래상황을 겁내하는 겁장이들이서가 아니라

보다 친환경적이고 역사와 문화의 넉넉한 가슴

그리고 미래비젼이 결코 물질적 풍요로 결정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닳은 사람들의 일성(一聲)임이 분명하다

 

특히 인천의 배다리 일대에 대한 시각은

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가? 대각의 화두를

염두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도로

우선, 횡단 거리 50미터의 산업도로는

인간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시간으로 충분치 않은 거리다

산업도로

이 넓고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길을 무자비하게

굴러다닐 수 톤의 무게를 지닌 기계 매카니즘의 대명사들에게

약자와 인간에 대해 자비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산업도로

충분치 않은 보상과 자로 줄 긋듯이 내는 길의 획일성과 반 강제성이

삶의 저변을 윽박지르듯이 겁을 주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폭압적이고 폭력적이고 무분별, 무차별적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산업도로

산업은 사회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약자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국가와 도시 그리고 기업의 이윤창출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기층민이 지닌 문화와 삶 그리고 평화의 안식들을 위협한다는 것.

 

배다리에 산업도로가 생겨난단다

가로로 휑하니 그어져, 지도의 일부가 새롭게 태어남과 동시에

어느 일부는 지구 밖 떠돌이 별처럼 사라질 지경에 이르게 된단다

 

이런 와중에 잠시 방점을 찍는 어느 이름없고 낯설기만한

건물이 붉게 충혈된 눈에 안약처럼 들어 온다

 

 

일명 여선교사 기숙사다

1905년에 지은 외국인 여선교사들의 숙소로

현재 시지정문화재로 선정돼 있는 곳이다

 

단아하다는 말이 가슴을 비집고 나온다

오래된 창 밖으로 고개를 쑥 내미는 벽안의 서양 아가씨가 상상이 된다

그녀가, 익명의 그녀가 종교적 신념으로 이 땅에 왔든

사랑하는 이를 찾아 이역만리 은자의 나라를 찾아왔든 지간에

내용은 중요치가 않다. 다만

오래된 길에 오래된 집이 오래된 향기를

풍기는 그 고태가 

급변하는 이 세태에서 그저 반갑게 맞이될 뿐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 괴물 같은 시설물이다

 

 요즘 트랜스포머가 유행인데

뭐, 그 아류는 아닌 것 같고 유심히 살펴 보면

난로처럼 생긴 커다란 화통에 연통 같은 줄기들이 어지럽게

가지처럼 달려져 있는 스팀 난방 기구였다

갈탄 또는 조개탄을 화덕에 넣어 불을 지피면 중간층에 고여 있는 물을 뎁히고

이 물은 곧 증기로 변해 방방 곳곳으로 온기가 전달되는

백 년전의 스팀 난방기구

그저 재미나고 신기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백 년동안 이 지구를 지켰으니

앞으로 구 백년은 더 살아가라고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젖어본다

고물 같은 평화가 정갈한 삶을 지키고 있는

배다리일대 옛 이름 우각리(쇠뿔고개)에서

배다리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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