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집

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

濟 雲 堂 2007. 8. 12. 00:26

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

 

 

작은 책방이 문을 열었다

어쩌자고 이 길거리에 문을 열었을까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다

 

도심의 가슴을 도려내듯

산업도로가 배다리 구도심 일대를 후벼파고 있는 작금에

떠날 사람 다 떠난 그 자리에

어인 일로 책방을 열었는지

곽 여사의 의중이 심난하다 못해 답답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황량한 거리에

몇몇의 지인들이 모여들더니만

얼마 후 동네에 남아 있던 헌책방 주인들까지 합세해서

얼추 백여 명이  모여들어

이 비좁은 길을 사람으로 채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길에 백여 명이라는 숫자는

획기적인 물리학적 변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루에 헌 책방을 찾는 이들의 총 수가

거의 이러할 진데 단숨에 길목을 막을 정도로 사람들이 꾄다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개업식은 순식간에 치러졌다

일흔을 넘긴 강태열 시인을 비롯해 작가회의 소속 십 여명과

박병석 신부, 동네 아주머니들 그리고 고로의 헌 책방 주인들과 일부 주민들

김윤식 시인, 문성진 위원장, 이성진 선생, 이희환 평론가 그리고... 

 

돼지 대가리며 떡이

대충 차려진 고사,  고사상?이 차려졌다

곽 여사의 육십 년 행보에 고사상이 차려지기는

이 번에 처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고사상에 의외의 절까지 바치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소위 기독자의 떨림은 없었을까

오죽했으면 사상과 삶의 법도를 모두 물리고 오로지 기구만을 위한

절을 올리게 되었던 것일까

 

곽여사는 대충 이런 사람

배다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배다리에서 산 사람

헌 책을 귀하게 여기다 못해

헌 책방을 기도실처럼 꾸며 놓은 사람

하나뿐인 자식 책방과 안 맞는다고 책방에서 쫓아낸 사람

찾아든 손님이 지식인이든 어린아이든, 막론하고

금새 친구로 만드는 사람

자신보다 어린 나를 이십 칠년 째 보면서도

반말 한번 안 하는 사람

 

그녀가 책방을 또 열었단다

헌 책 전시실이 맘에 안 찬다고

문학 관련 책들만 따로 모아 만들었다는

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이란 도발적 간판을

드디어 내 걸은 것이다.

 

이 황량하고 삭막한 도시 속

깊은 구렁에

오아시스 같은 책방을 연 것이다 

제 2의 곽현숙이 태어나기를 고대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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