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집

흑인부대 -배인철-

濟 雲 堂 2007. 6. 7. 00:46

 

린우드 에이 뿌라운, 에리니오스 테일러

젬스 에이 쫀슨, 윌리 켐프, 모리스

 

 

오늘같이 조용히 비 내리는 밤이면

그대들의 이름이

한 절의 서글픈 서정시

한 방울 비 한 방울은

그대들의 이름을

먼 나라로 싣고 온 한 절의 노래

 

 

고요히 눈을 감으매 홀로

늬들의 노래  so long

나직이 부른다

그대들을 보낸 뒤

쓸쓸한 나에게 또 한 가지 기쁨은

밤이면 노래하고 때로 쉬던

이 방에 내 또한

노래하고 때로 자던 흑인부대여

보지 못한 그대들의 아가씨들이며

그대들의 박해사(迫害史) 가슴 아프며

나는 black boy를

우리말로 옮겨놓는다

 

 

뿌라운이여

아프리카의 역사를 알고 있는가

테일러여

쫀슨이여

그리고 켐프는 검은 시를 쓰고 있을까

모리스는 백인의 밭을 갈겠지

 

 

 

 

 

<현대문학 1963.2> -전문-

 

 

 

 

 

시도 참 별난 시다. 흑인부대라는 주제도 그렇거니와

내용면에서도 제대로 씹어 먹지 못할 정도로 매우 껄끄럽기 짝이 없는 시다

그러나 이 시의 주제는 극명하다 못해 자신의 처지(약소민족)를 흑인으로 등치 시키는 묘한 구성을 지니기도 했다.

 

인물에 대한 이름을 따라 부르면 참으로 어색하기만 한데

나름대로 멋내기를 했던 것 같다

부라운을 뿌라운으로 존슨을 쫀슨으로 발음해버린 시인의 의도는

요즘처럼 연음이 실용화 된 시점에서 보면 격정적인 감흥으로 읽혀지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불려지기도 했다니 한 편으로

그 변화의 추이를 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현대문학이라는 굵직한 문학의 기둥에 실렸을 정도면

배인철 시인의 위상과 시의 독특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해방공간(1947년) 속에서 불의한 죽음으로 시대를 마감한 시인을 떠올리며

시인이 당대를 향해 무엇을 노래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납득하지만

여전히 시인의 불의한 죽음은

납득되지 않은 상태로 구천을 떠돌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은 연로한 당신의 여동생이 말없이 자택을 지키고 있지만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수없이 생략된 의혹들이 굳게 닫힌 대문처럼

침묵으로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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