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인천의 애관극장

濟 雲 堂 2007. 3. 30. 02:02

 일년에 적어도 넉 달 정도는 대륙의 찬 기운을 고스란히 머금게 마련이었던
일백 여 년 전의 「싸리재」그 황망한 언덕배기.
기나긴 겨울의 마지막 허물이었을 꽃샘추위마저 가시고 나면,
어느덧 삭풍에 움츠려 있던 들녘의 싸리나무 가지에도 젓멍울 같은 새순들이 움트고 있었다.

1895년 그 해 봄날도 그러했으리라.
개항의 기류에 온몸을 내 맡기던 십여 년 세월은 정치적 간난과 민족적 암울함,
그리고 신문물의 도래로 인해서 극심한 문화적 혼돈이 뒤섞였던 세월이었을 것이다.
이 당시 인천에는 극장이 여럿 있었는데 오늘날처럼 전문적인 영화전용 시설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표관을 위시해서 가부끼좌, 인천좌 등이 있었다.
이 들은 일본인 전용 영화관이었거나 상설 공연 극장으로써 조선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공간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상설 공연장인 「협률사」가 「싸리재」모롱이에 둥지를 틀게 되었는데,
오늘날 애관극장의 뿌리가 되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을 위해 세워진 공연장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정치국이란 인물에 의해 세워진 협률사는
볼거리에 목말라했던 인천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협률사는 곧 인천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축항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192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오늘날의「애관」으로 이름이 바뀌는 내력을 갖게 되었다.
애관극장의 연혁은 손가락 셈으로 따져 보더라도 가히 장구한 역사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고종 경축식에 맞춰 한국 최초로 지어졌다고 하는 옥내극장인 同名(동명)의 협률사는 1902년에 설립되었고,
이인직 등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1908년에 지어졌다는 것을 미루어 보면
인천의 애관극장(협률사)은 역사적으로 따져봐도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閑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살던..., 똥 바다  (0) 2007.12.08
한국최초 철도 가설도  (0) 2007.08.30
맥아더 Douglas Mcathur  (0) 2007.04.15
홍예문프로젝트 팀에게  (0) 2007.03.28
우공이천  (0) 200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