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화장실에 대한 몇 가지 추억 1

濟 雲 堂 2002. 8. 31. 17:16
바나나지금은 하찮은 과일거리의 행상도 손쉽게 팔고애들은 거저 줘도 잘 먹지 않는 과일.음습한 화장실에는유난히 곱등이 귀뚜라미가 많았다쪽문을 빼놓고는사방의 벽에 달라붙어서길고 가느다란 촉수를 더듬어 대던어릴 적에 우리 집 화장실행여, 실수로 놈 하나 건드리면일제히 굽은 무릎을 펴면서 뛰어다니고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놈들이 진정이 되기를마음 속 깊은 기도를 바치곤 하였던어릴 적에 우리 집 화장실내 엉덩이에 와 부딪치는 놈이 있는가 하면무방비의 얼굴에 난 데 없이 달려드는 놈이 있었고두려움으로 밀쳤던 쪽문 밖으로하릴없이 뛰쳐나간 놈도 있었다그 후로 나는,화장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미리 준비해 둔'후끼'라는 것을 안개처럼 뿌리고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마치 내가 보이지 않도록 말이지그 때에는요즘 시판되고 있는 'F-킬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물에 농약을 적당히 타서 쓰는 약물을 사용했는데이의 적절하게 뿌려두면엔간한 해충들이 박멸되는 살충제 구실을 하였다아마 두 가지 종류였을 것이다병째로 빨대 비슷한 것을 꽂고입으로 힘껏 뿜어 대는 것이 있는가 하면,손잡이가 마치 펌프처럼 생겨서분무하듯이 밀어대는비교적 값이 나갔던 플라스틱 류의똥 눌 자리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으면아직 살아서 다리를 배배 꼬거나꿈틀대는 놈들이 꼭 한 두 마리가 있었다농약을 너무 뿌려 댔는지 똥을 누고 나오면늘 상 머리가 어찔해졌었고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바나나지금은 하찮은 과일거리의 행상도 손쉽게 팔고애들은 거저 줘도 먹지 않는 과일화장실 쪽문을 활짝 열어제치며옛다! 입에 넣어주시던 우직스런 어머니 사랑두려움에 움찔대던 또 한번의 경악이었다그러나 다섯 명의 형들 몰래 막내인 내게허옇게 까서 한 입에 넣어주셨던바나나유년기 화장실에서의 추억오늘 따라 무거운 머릿속에서 가볍게 떠오르고 있다
밤의 대화 :: 이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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