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신포동에서 산다는 거

濟 雲 堂 2000. 8. 21. 09:00
내 삶을 떠받치고 있는 이 동네에서
익명의 당신은
그리운 존재가 아녔는가?

그리움은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부서지고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서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을 떠받치고 있는 동네

신포동에선,
그리움이 적으면 적을 수록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아직, 그대를 익명으로 기억하는
나의 자유로움은
날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일 겁니다

그런 오후에
담장 밑에 냉이 꽃 한 떨기를 보았습니다
거칠은 건기의 뜰 아래
손톱 보다 더 작은 모습으로, 그러나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모습이었을
냉이꽃 한 떨기를 보았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이 마을에서의 나는
粉塵처럼 떠돌다 어쩌다가
실 뿌리 내린 홀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날개 달린 짐승의 기억도, 더는
측정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도
당신이 받쳐든 시간 속에서 용해되고 있습니다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록에
나는 익명으로 사라지고
당신은 더욱 뚜렸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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