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인천 도시 관광의 허와 실

濟 雲 堂 2013. 5. 15. 00:22

 

 

1948년 3월 3일자 대중일보에 용동101번지 소재 국일관이 신장개업했다는 광고가 전해진다. 일제강점 당시 서울 파고다 공원 앞에 세워진 국일관과 같은 이름을 사용한 걸 보면, 1920년대 종로 국일관의 위상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난데없이 국일관 타령이냐 할지 모르지만, 몇 해 전까지 인천우체국 옆에도 동명의 국일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란한 조명과 무대, 넓은 객석, 고막 터질듯 한 소리를 원체 꺼려하는 탓에 한두 번 기웃거리는데 그치고만 불연의 장소는 몇 년째 휑뎅그렁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국일관 간판을 내리고 모 설렁탕집이 그 터의 재기를 기렸지만 이마저도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을씨년스럽게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인천 음식문화사에 별처럼 반짝이는 냉면을 위시해 설렁탕과 숯불고기 등을 팔았던 식당은 방콕의 ‘망 껀 루엉(로얄 드래곤)’을 본 뜬 것처럼 무대와 좌석이 구별돼 있었다. 이쯤에서 ‘주차장’ ‘무대와 객석’이란 단어로 보아 그 규모의 만만찮음이 연상될지 모른다. 하여간 기네스에 등재된 세계 최대의 식당과 인천의 설렁탕집과의 상관성은 비교적 크다, 넓다, 공연을 한다, 전통음식을 판매한다 등으로 모아 볼 수 있다. 1992년부터 지금껏 명성을 떨치는 ‘황룡의 눈’ 식당은 롤러스케이트 배달과 세계 각지의 춤, 무에 타이, 옥탑에서 줄 타고 내려오는 배달꾼의 아슬아슬한 묘기 등으로 방문자의 미각을 증폭시켰다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멋쩍게 부르는 가수를 등지고 머쓱하니 냉면을 흡입해야 했던 상황은 분명 대별이 된다.

 

인천도심 깊이 뿌리내린 근대문화자산을 통해 지역경제를 꽃피우자는 바람이 일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우리 처지보다 경제력이 좀 나은 유수의 선진 도시를 벤치마킹해서 얻어낸 결과로 보여 진다. 그래서인지 전국 근대개항도시라 불리는 도시들이 일색으로 꽃 분홍으로 도배돼 있는 느낌이다. 내용의 차별성은 존재하되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거의 동색에 가깝다. 이 모두가 벤치마킹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선진도시를 워낙 본뜨다보니, 오죽하면 외국을 가더라도 도심관광의 매뉴얼에 헷갈릴 틈 없이 쉽게 익숙해지고 만다. 먹고 놀고 보고 체험하는 일체가 자본주의 형상을 빼다 박은 신기루와 같다. 아예 먹고 놀고 쉬는 것에 올인 하는 것이 착시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오고갈 정도이다.

 

그러나 관광의 최상위 개념은 뭐니 뭐니 해도 ‘존재의 발견’이다. 다른 존재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和而不同화이부동’함을 즐거이 체험하는 게 그 목적이 된다. 인천 도시 관광을 정리하자면 대체적으로 근엄하면서 점잖고, 소비적이면서 살 게 별로 없고, 놀 게 많은 듯 하지만 쉴 그늘조차 없는 ‘裸木나목’처럼 관광의 큰 틀만 있고 먹을 게 없는 잔칫집과 같다. 다른 존재를 통해 감동을 느껴보지 않은 상인주체들이 관광을 기치로 인천시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정치행정가들의 발상에 자발심이 들까 의문이 든다. 퓨처마킹은 벤치마킹을 뛰어넘어 좀 삐딱해 보이지만 자주성이 바탕이 된 글로컬리제이션을 몸소 실천하는 상인이 주체가 되는 철학적 자세라 하겠다.

 

인천 도시 관광은 역사의 박제품 내지는 자본주의의 신기루를 보여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진정성이 깃든 삶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문화관광 코디네이터들이 한 무리의 관광객을 이끌고 근대 건축물들과 골목골목을 자근자근 설명해나가는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 그 무리들이 어디에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퉁퉁 부은 다리를 어루만질지를 인천이 담보하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이참에 ‘망 껀 루엉’ 아니, 도발적이면서도 화끈하게 관광객들을 사로잡아줄 뭔가가 떠오르는 건 비단 필자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