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스-로마나(Pax-Romana) 성립의 주춧돌은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이었고
그 군대를 두렵게 만들 수 있던 것은
남들보다 겨우 2내지 3센티 높게 신고 다닌
샌들(Sandal)이었다
한 아파트에서 20년 간 살면서
아래 발치를 내려다보고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유난히 길기도 했지만
기이하기도 했던 겨울 날씨 탓에
움츠러들어 내려다 보기조차 민망스러울 정도였던
이 번 겨울
바야흐로 봄은 찾아들었건만
으실으실하게 살틈을 헤치고 냉소적인 바람은
수시로 겨드랑이 사이를 넘나들었다
젓가슴팍 높이에서 제어된 시멘트 난간이
늘 고마운 존재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는 건 아니지만
오랜 기간 동안 통제된 바깥에 대한 궁금증은
장기간 지속되는 불황의 목책 너머를 목이 빠져라
조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위태롭게 불어 젖히는 봄 바람이
오늘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에는
오히려 그것을 못견뎌 하듯 일탈을 꿈꾸어 봄도
재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가령, 무작위로 길에 깔린 지천의 꽃들이
폭신폭신한 신혼집 예단 이부자리처럼 보인다던가
게다가 꽃 분홍 불그락하니 펼쳐진 꽃 무덤 등등으로
길에서
상상력의 열매를 찾아 기웃거리는
시인의 눈쌀은 여전히 불평으로 차여 있지만
그런 날은 혓등 아래 단물 고이는 즐거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지독한 겨울 학기를 마친 꽃망울들이
일제히 입을 열어 봄을 선언하는 아이들처럼
14 층에서
맨 아래 층을 내려다 본다
모두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4.19도
잔인함도
우리에게 등짐 지워진 모든 애절함도
그저 봄 나들이 같은 추억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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