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14 층

濟 雲 堂 2010. 4. 19. 23:14

 

 

빡스-로마나(Pax-Romana) 성립의 주춧돌은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이었고

그 군대를 두렵게 만들 수 있던 것은

남들보다 겨우 2내지 3센티 높게 신고 다닌 

샌들(Sandal)이었다

 

한 아파트에서 20년 간 살면서

아래 발치를 내려다보고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유난히 길기도 했지만

기이하기도 했던 겨울 날씨 탓에

움츠러들어 내려다 보기조차 민망스러울 정도였던

이 번 겨울

 

바야흐로 봄은 찾아들었건만

으실으실하게 살틈을 헤치고 냉소적인 바람은

수시로 겨드랑이 사이를 넘나들었다

 

젓가슴팍 높이에서 제어된 시멘트 난간이

늘 고마운 존재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는 건 아니지만

오랜 기간 동안 통제된 바깥에 대한 궁금증은

장기간 지속되는 불황의 목책 너머를 목이 빠져라

조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위태롭게 불어 젖히는 봄 바람이

오늘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에는

오히려 그것을 못견뎌 하듯 일탈을 꿈꾸어 봄도

재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가령, 무작위로 길에 깔린 지천의 꽃들이

폭신폭신한 신혼집 예단 이부자리처럼 보인다던가

게다가 꽃 분홍 불그락하니 펼쳐진 꽃 무덤 등등으로

 

길에서

상상력의 열매를 찾아 기웃거리는

시인의 눈쌀은 여전히 불평으로 차여 있지만

그런 날은 혓등 아래 단물 고이는 즐거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지독한 겨울 학기를 마친 꽃망울들이

일제히 입을 열어 봄을 선언하는 아이들처럼

 

14 층에서

맨 아래 층을 내려다 본다

모두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4.19도

잔인함도

우리에게 등짐 지워진 모든 애절함도

그저 봄 나들이 같은 추억이었으면 싶다.

 

 

 

 

 

 

 

 

 

'閑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시간  (0) 2010.07.03
角, 時 그리고 오늘  (0) 2010.06.03
이 걸 어쩐다~!  (0) 2010.04.10
정겨운 밥상에 앉아 묵힌 생각을 물리다   (0) 2010.04.04
오늘은  (0) 201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