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경건주의보敬虔注意報

濟 雲 堂 2009. 7. 15. 08:59

 

41833

 

웃음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은 철학이나 대중 문화적 관점과 달리 매우 기계적이고 단순하다. 그러나 얼굴 근육 15가닥으로 만들어지는 웃음은 때와 장소 또는 사람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그 의미가 달라져 마치 칠면조처럼 수시로 모습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웃음은 보통 긍정적 측면에서의 ‘웃음’과 부정적 측면에서 웃음이 아니라는 의미의 ‘비웃음’으로 나뉜다. 긍정적 웃음이 선사하는 건강 지향적이며 포용적인 태도는 개인의 심신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도모하는데 비해, 부정적 웃음은 공격적이고 자학적인 성질을 바탕에 깔고 있으므로 자칫 공공성을 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을 정리한 ‘희노애락애오욕’ 칠정론(七情論) 가운데 기쁨 또는 즐거움에 해당하는 ‘웃음’을 빗댄 데에는 요즘 우리사회가 도를 넘을 정도로 경건해졌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는 점도 한몫 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지 못하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적 금융 위기 또한 외환으로 다가와 다중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 전반이 소심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주름지기 시작하면 그 골도 따라 깊어지기 때문이다.

 

전국적 신드롬이라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확충과 관광자원의 개발, 엑스포 유치 등등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필자의 기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된다. 지리적 특성과 역사성 그리고 상업적 활용가치 등을 놓고 민•관•학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숙의하는 과정을 곁에서 보면 모두 맞는 말처럼 들리고, 도출해낸 결론대로 실행한다면 모두 성공할 것처럼 뇌세 당하고 만다. 그러나 과거 엑스포 내지는 실험적 문화공간과 관광자원의 개발 등이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빛나는 값어치를 이어오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천여 개가 넘는 전국의 축제를 보더라도 이름만 달리했지 대동소이한 정체성에 의구심과 절대다중의 냉소적 시선이 연일 하마평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의 본성을 지닌 ‘삐딱이’들의 시선이라고 치부해버려도 될 법하지만, 이른바 먹을거리, 볼거리, 놀거리 등을 놓고 봤을 때 전국적 동일현상이라고 단정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감을 만족케 하는 행사 내용들의 어쩔 수 없음을 탓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각지의 특성을 개성 있게 살린 ‘꺼리’들을 폄훼하자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현재’를 넘어섰느냐는 것이고 ‘육감’마저 감동케 했느냐는 데에 있다.

 

 현재는 찰라에 불과하지만 머나먼 과거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펼쳐질 미래의 담보이기 때문이다. 현재적 웃음의 배후에 본능적으로 ‘육감’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묵과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의 사후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는 습성을 잊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비웃음을 지라도.

 

인천광역시 중구 내의 ‘월미관광특구’가 올해로 특구 지정 9년째를 맞고 있다. 월미도권역, 연안부두권역, 동인천과 신포동권역 그리고 자유공원과 함께 북성동 차이나타운 일대를 아우르는 지대한 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해 절기별로 ‘꺼리’를 만들어 시민들의 오감을 만족케 하려고 부단히 경주하고 있다. 민•관•학이 결속해 ‘축제 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시설을 늘리고 정비하는 등 잰 걸음으로 ‘현재’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그러나 특구 내에 조성된 여러 관광시설들과 구성의 면모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어딘가 모르게 비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근대건축물들은 지나치게 박제화 되어 있고 특구 전체는 ‘모 아니면 윷’ 격으로 명품화 되어 있다. 단박에 말하면 육감을 억제하는 거대한 경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마치 서양 중세에 웃음이 통제됐던 것처럼 포르말린 처리돼 도무지 ‘흥’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