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철거의 배후 2

濟 雲 堂 2009. 3. 2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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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목적과 주제를 제 아무리 곱씹어 정의했다 한들, 변화의지는 그 자체가 정체성이 된다. 새로움을 쫓아야만 생존하는 이 불멸의 유전자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삶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그림자를 죽을 때까지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한 말이다. 느닷없이 철학적 명제를 거들먹거리게 된 데에는 삶의 거처로 인식되어온 집들이 순식간에 철거되는 사건들이 다 반사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케케묵은 삶의 처소로 폄하돼 도시재생이란 미명하에 무너져가는 집들이 도처에 널브러져 있어서이다. 언젠가 우리의 육신도 지구의 바닥으로 사라진다는 개연성을 잠재적으로 의식하고 있지만, 순식간이고 무자비하고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집들이 사라진다는 이유가 애먼 속을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겪어 왔던 터. 아시안 게임 유치한다고, 올림픽 개최한다고, 월드컵 유치한다고, 최근엔 인천도시축전과 2014년 아시안 게임 유치를 위해 도시 전체를 변장시켜야 한다는 망측한 논리의 재현이 안쓰러워 더욱 그렇다. 이러한 변화와 변장의 본질이 일시적이고 일회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무렵에는, 자산적 가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한 역사적 전거들이었다는 회한을 또 다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국산 일대와 배다리 그리고 도처를 재개발 지구로 설정해놓은 시행정부의 목적과 의도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향유와 함께 역사적 의미를 세우기 위해 기치를 올렸다고 주장한다면, 다시 한 번 우리의 역사의 뒤란을 되돌아 볼 일이다. 과거를 살리지 않은 채 만들어진 현재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조직이 바로 시행정부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 그 것이 사회변화에 의한 요구인지 자발적 변화의지와 부의 재 생산구조를 위한 또 다른 모험인지는 정확히 알아낼 길이 없다. 그러나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불균형에 의한 실험적 구조변경이란 측면에서 조망해 본다면 대부분 철거의 일반적인 모습은 비인간적이기 짝이 없다. 가재도구들이 홀랑 뒤집혀진 채 혼돈의 냄새를 풍기는 빈 집에 들어서면 배설의 물리적 욕구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부추기고, 끊임없이 바벨탑을 쌓으려는 욕구와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고 만다. 여기서 발생하는 도시 양극화 현상은 도시개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긴 흙탕물 같다.

 

 시 지정문화재, 국가사적, 근대를 벗어나 자율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부모님 세대들의 마음의 고향, 지난 20세기 생활 문화 공간,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지난했던 시절 그 가슴 절절한 사연이 배인 공간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굳이 온고지신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인생의 교과서이자 미래의 청사진으로 손색이 없는 구도심이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철거되는 우주(집)의 잔재들, 파헤쳐진 도로들, 거리로 지하도로 내 몰린 사람들, 고장난 채 버려진 자전거들, 알몸인 채 아무렇게나 유기된 여성들, 읽기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무심으로 버려진 책들, 고쳐 입거나 깨끗하게 빨아 입어도 무방해 보이는 옷가지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버리고 부수고 찢고 목숨을 끊어버리는 이 엄청난 유기적 담보물들이 애당초 이렇게 불량스러웠을까.

 

 철거되어 사라진 집 위로 또 다시 집이 세워지고 있다. 철기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들이 청동기 고인돌 속으로 다시 무덤 삼아 들어갔다고 하는 회귀 본능이라면 모를까, 헌집 위에 또 다시 유예된 헌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또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집을 짓는, 벼랑 같은 현실감각 너머로 칼날 같은 우화가 번뜩거린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몽땅 다 줄 게. 바벨탑 같은 새 집 한 채만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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