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밍크비누

濟 雲 堂 2008. 8. 11. 23:48

 

머리에 돋아난

흰 머리카락이 그렇게 미워보이더니만

이번 여름을 계기로

드디어 내 살의 일부로 인정하고 만다

 

여름 내, 좀 참을 만하다 싶어 땀 흘리는 것에 대해서

즐기고 있다 생각할 무렵

허를 찌르 듯 사방팔방으로 뎀벼드는 무더위에

기진맥진 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낄 무렵

 

연실 닦아내도 빗물처럼 흐르는 끈적임에는 딱히 방도가 없어보였다

체력 저하인가? 아니면 정신이 덜 영글어서?

먹는 게 부실해서? 이도저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뭘까?

 

머릿속은 새벽녘을 박차고 나온 누르스름한 두부처럼

따끈따끈해지는 것 같고

온몸은 찐득찐득, 파리 잡으려고 매달다가 손에 묻은 끈끈이처럼

불쾌감이 극대되어 있고

머릴 빗어 대지만 땀에 절었는지

빗질이 잘 되지 않고 떡져 있는 머리카락

 

시원스레 팡팡 쏟아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찾아서

동네 공중화장실을 찾아 갔더니만

발디딜 틈조차없이 빽빽하게 늘어선 동네 어르신들이

저 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옷매무새를 고치시는데

나도 한 자리 차지해 볼 요량으로 거울 앞에 서는 순간

소금에 절어 한 뭉치로 엮여 있는 흰 머리카락이

눈에 꽂혔다

 

옘병...

지난 세월에 게워내던 분노 서린 허사(虛詞)가 아니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체념에 가까운 실사인 옘병...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졸지에 몰카에 걸린 황당한 표정이 클로즈 업 되었다

 

거울에 반사된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이 갑자기

한 얼굴로 보여졌다.

까꾸리 아저씨, 참기름집 아저씨, 구월산 유격대 아저씨, 고추집 아저씨

대머리 변호사 아저씨 그리고 지나던 초로의 객...얼굴들이

비슷하게 아니 뭔가 하나를 향해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와중에 나 또한 이들이 머금은 세월 쪽으로 탈바꿈하려는 동태를

드디어 감지하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당신들의 칠 팔십 평생은 거울에 비친 얼굴을 닮기 위해

살아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난 과거야 어떻든 간에

현재처럼 동안을 가진 순박한 늙음의 세계만 존재한다면야

살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Fade-out 되고 있었다

 

누가 선물을 했는지 기억조차 없는 양철통 밍크비누 상자에는

경첩을 비롯해 대못 등이 녹슬어 있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부식된다는 생각을 먹기 시작할 무렵에 받은

선물일 것 같다

다행한 것은 선물 이미지가 주는 신선한 충격이

밍크비누 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뭔가를 누군가로부터 받는 다는 것에는

철저한 고마움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그 것이 녹슬어 버리고 쓸모 없게 변할 지언정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가 깊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이 1970년대에 유행했던 풍조이든

당대 최고의 미녀 얼굴이 박힌 광고의 미학이 깃들었든 지간에

천광유지화학공업주식회사의 로고가 박혔든

Mink Deluxe Beauty Soap이라고 영문을 썼든 지간에

현재는 고물(古物)이 되어 세월의 녹을 여전히 묻히고 있다는 사실

 

더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배개잇엔 얼룩이 마르질 않았고

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미지근하게 변질된 수돗물을 쫘악 뿌리기 일쑤였다

밤 하늘의 별들이 누렇게 뜬 채 따뜻하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불길한 징조일 것이다

하마,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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