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창고를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불현듯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먼지를 탁탁 털어놓고 보니 거기
많이 본 듯한 형제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찍힌
오래된 사진이었다.
언제였더라?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자세히 훑어보니
어느 해 크리스마스였노라고 쓰인 작은 문구가
사진의 맨 아래에 기록돼 있었다
언제였더라?
우리 형제가 이렇게 한꺼번에
시간을 내어 함께 찍어본 적이...
이 사진은 아마도
내 기억 속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여섯 형제가 이 지상에 남긴 최후의 사진이 아닐까 싶다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이후로 한번도 이렇게 모여서 찍어본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본 순간 찡하니 눈물샘을 자극하게 되었고
허허롭게시리 연달아 탄식이 흐르고 말았다
단지, 내가 만들고 소장해 왔던
일명 ‘기억의 창고’를 정돈만 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발견한 횡재였기에 그 기쁨은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의 소용돌이로 나를 몰아가버렸던 거였다
최후라는 의미는
절박한 이미지와 더불어
비장함이 숨어 있기에 충분하였다
아버지의 환갑잔치라든지 어머니의 고희잔치라든지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을 터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우리 형제 여섯 명이 함께 찍은 사진에는
불행하게도 늘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연이어 매달아 놓게 되었다
지금,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내 마음 속에는 기기묘묘한 형제들의 현실이
가슴 저미는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크게 말다툼을 하시거나
그랬던 분들은 아니셨다.
천주교에 대한 신심과 더불어 치명자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늘 넘치던 분들이셨다.
아버지는 커다란 눈에 마음씨 좋게 생기셨고
어머니는 야무진 눈매에 살림 잘 하게 생긴 억척이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돼버렸지만 아버지는 한국에 묻히셨고
어머니가 미국에 따로 묻히게 된 상황, 어쨌든 이를 둘째치더라도
어머니를 닮은 홀수 형제, 즉 첫째 셋째 다섯째는 미국에서
아버지를 닮은 짝수 형제인 둘째 넷째 여섯째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참으로 기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후로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몰라도 형제가 한꺼번에 모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돼버렸다
최후의 사진
이러한 상황에서 한 장 남은 이 사진에는
최후 또는 마지막이라는 닉네임이 늘 붙어 다닐 것이고
더불어 간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 또한
죽을 때까지 붙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