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이어 받은 지 올해로 28년째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누구든 도맡아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머니 말씀에 묵묵부답 침묵을 깨는 소리는 당신의 “아니면 말고”였다. 이윽고 ‘예’라고 대답한 것이 빌미가 되어 “그럼 막내가 하는 걸로...” 기울어지게 됐던 것이다. 어머니 말씀에 자식 된 입장에서 일상적으로 대답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으니, 종속적 신념을 넘어 우연한 상황이 빚어낸 그 기묘했던 연출은, 사람의 일생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기에 충분하였다.
남보다 비교 우위에 서야 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획득하여 소비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미덕이라 조장하는 사회 조류와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은, 운명처럼 뇌리에 박혀있는 어머니 말씀 ‘아니면 말고’가 크게 작용하였다. 부정적 시각에서 보면, 자기합리화 내지는 체념의 자충수를 하릴없이 보지한 채, 시대에 뒤떨어져 살아가는 소시민의 전형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자기불안과 화를 돋우는 일체를 통제해 타인에게 치명적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강점도 발견하게 된다. 경쟁의 대상, 비교 우위적 가치가 타인의 존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 행위라면, 자신을 지키되 남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해석학적 순환론으로 따져보아 ‘아니면 말고’는 오히려 민주사회의 서민철학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때부터 생겨났다.
인천은 잠재적 강점과 장점이 많은 도시이다. 지상의 모든 물이 바다로 향해 흘러가듯, 눈물을 가진 일체의 생명성을 수용하려는 바다처럼 너른 가슴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개항 무렵부터 시작해 이제껏, 여타의 도시 형성사에 견줘보아도 이렇게 괄목할 만한 변화로 증폭시켰던 지역은 없다고 안팎으로 칭송이 자자하다. 그러나 단점과 약점은 성장의 선반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먼지처럼 운명적 관계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필연성이 뒤따르게 된다. 해석의 관점을 어느 쪽에 두느냐에 따라 호불호로 갈리지만 대체적으로 대립과 타협이 순환되는 반복적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도시 성장의 외적 발달이 지난 세기의 숙제였다면, 인문학의 내적 축적과 저변확대가 현재의 큰 화두로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결국, 인천이라는 공간에 사람과 역사가 채워지고 도시의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단계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명제에 맞닥뜨려야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인천이 양적 지향의 고리를 끊고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인문학의 미풍을 태풍의 눈처럼 확대시켜 서민 삶의 질을 보장하겠노라 하더니, 정작 인문학의 수혜를 받아야 할 권력집단은 여전히 무지하기 짝이 없고, 시민 위에 오래도록 군림하려는 꼼수를 다양하게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라 강제하면서 탈법적 작태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불순함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젊은 나이에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린 스포츠 스타들의 이름을 빌어 거리를 조성하고 체육관을 짓는 것에 아직도 어리둥절해 하는 다수의 시민들은, 이 게 과연 대다수 시민의 삶의 질과 환경을 높이는 일일까 고민조차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단꿈을 그저 기다리는 시대는 분명 아닐 것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작가의 의중과 달리 전시행정, 도시 상품화라는 미명에 푸른 멍을 안고 살아갈 주민들의 질박한 희망 또한 단박에 박제될 것이 분명해 보여서이다. 아니면 말고.
그러나 ‘아니면 말고’의 본질적 지향점은 긍정의 손바닥으로 오롯이 받쳐 든 촛불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자신을 지키되 타인도 존중받는 믿음이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현실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면 더 없는 위안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를 보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태풍의 바람, 그 한 방에 훅 가버리던 아름드리 나무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마디마디 성장의 상처를 달고 진화한 대나무의 억셈을 진즉에 알아봤던 터, 이제는 도시 성장의 배열을 조율해야 할 때가 아닌지 진정으로 인천 시민 사회에 묻고 싶다.
한 가지 일에 매진한 것이 28년 되었다는 것은, 어머니의 유지를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온 28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유고로 인해 어리바리 했던 삶이 상처를 딛고 단단한 마디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지리한 운명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게 해준 어머니 말씀 덕이 크다. 하여,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오늘따라 지독하게, 두 분이 몹시 그립지만, 먼 훗날 자식새끼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분명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는 날로 삼기를 적극 권하여 본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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