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갈무리해온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한 열정은 시집으로, 책으로 또는 자료집으로 몇 권 상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착을 빙자해 개인적 욕망을 이루려는 데 마음이 쏠려 방향감각을 잃을 때가 더 많았음을 반성해 본다. 고향에 대한 애착과 개인적 욕망 그리고 방향감각을 여는 글로 넣은 데에는 ‘인천아, 너는 어떠한 도시냐?’ 라는 고루한 질문이 여전히 대두되어서이다. 인천 땅을 디디고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 쯤 뇌까려봤을 인천 정체성과 인천사람으로서의 방향감각 찾기 또한 유효한 화두가 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용동권번에서 종사했던 어르신을 알게 되었다. 알다시피 용동권번은 관동에 있던 기생조합이 강제병합 후 용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불리던 명칭이다. 권번과 기생조합이 등치되는 상황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상상의 자유로움 준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개인사를 들춰 까발리려는 욕심을 접은 것은 결정적으로 그 분의 자손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또 한 분은 애관이 축항사로 불렸던 시절부터 여태껏 관계하고 계신 분인데, 워낙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은 터라 이도 역시 개인사와 자손과의 관계 때문에 아직까지 비밀의 봉인을 떼지 않고 있다. 이 두 가지 예를 어렵사리 꺼낸 데에는 ‘관계’라는 운명적 상황과 비밀은 지켜주고 존중되어야 그 가치가 비로소 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황설의 핵심은 방향감각과 관계, 다시 말해서 인천사람으로서의 방향감각과 존재감 부재 문제가 수면을 표류하고 있다고 판단되어서이다. 점잖게 말하면 ‘인천 도시 기획자’들이 ‘핸들링’하는 ‘인천호’는 사공도 절반이고 손님도 절반인 모양새이다. 사공은 어떡하든 간에 제 갈 길을 가고, 나머지 절반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목적지조차 상실한 손님처럼 팔짱을 낀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산으로 갈 기세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운명처럼 기생하는 영재집단이 똥오줌 못 가리고 ‘멀티 플레이어’노릇을 하거나, 공직 봉사자들이 제 영혼과 무관하다는 듯 권력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어차피 세상은 제 삶의 희망을 대신하는 구조로 남을 이용해야 사니까 말이다. 그러나 공직, 정확히 말하면 거대도시 인천을 움직이는 ‘인천 기획자’ 그룹에 속한 일체의 풀무질 꾼들은 소외, 가난, 약자들의 기를 살려주는 부챗살 같은 마음조차 없어 보인다.
일이란 투명, 공정, 정의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다. 설령 그렇게 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해져 버리는 게 사람의 일이기도 하다. 사랑은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 대부분이 지지자는 많은데 친구는 별로 없다고 한다. 지지자는 언제고 등을 돌릴 수 있지만 친구는 운명적으로 맺어지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해법을 제시한다면 우선 관계 설정의 대전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당신’이라는 개념정립이다. 이 이야기의 화살이 겨냥하는 것은 총체적 ‘인천 기획자’그룹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세포조직을 대표하는 장(長)급들이다. 친구는 미워도 친구가 되지만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지지를 표명하는 사람들은 지지자일 뿐 친구가 될 수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친구는 나무(木)에 올라서서(立) 친구가 오기를 오매불망 살펴보고(見) 기다려지는 사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인천을 기획, 정치하는 사람들이 대임을 받았음에도 존재감에 불안을 느낀다면, 톡 까놓고 지킬 덕목을 제시해보면 친구관계의 재정립과 내외조직 간의 신뢰와 존중을 통한 자기 낮추기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에 결정지어질 운명의 갈림길에서 호불호의 열쇠를 친구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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