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네로(Armando sorcillo作)가 한 시대를 휩쓸 무렵
고양이를 떠 올릴 때면
무조건 검은 색조를 띄고 동공이 세로로 길족하게 접혀지는
귀여운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일본에 이어 1970년대 한국 사회를 검게 점령했던
검은 고양이 네로(Volevo un Gatto Nero)는
국제적 이질성을 넘어서며
동시대의 연가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노랑 얼룩을 군데군데 묻힌 고양이가
난간에 앉아 있었다
철망을 허술하게 걸어 놓은 담벼락의 두려움도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응시하는 담대함에 잠시 놀란다
이웃집 수퍼에서 기르는 새끼 고양이가 벌써 4개월이 되었다
손을 갖다대면 깨물고 할퀴고
뒹굴다가 냅다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게
여간 재미스러운지 손목에는 할퀸 자국 따라
피가 흐르는 데도 웃음을 놓을 생각 안 하는 주인이
외려 재미스러운지라 잠시 넉을 잃고 쳐다보는 것도 재미가 되었다
거기에는 '나도 해 보고 싶은데...'라는 잠재성이 내포돼 있지만
소유냐 비소유냐에 대한 점유 문제이기 때문에
대개는 다른 구경꾼처럼 대리 만족해야 하는 상황으로 즉결되었다
나도 그런 고양이를 몇 마리 기른 적이 있다
방앗간 특성상 어머니는 어디선가 끊이지 않고
고양이 데려다 놓기를 다반사로 하셨음이다
다반사로 여기된 이유는 늘 같은 결론이었다
얼마 안 지나 죽고, 나가다가 다시 들어 왔을 땐
엄청 달라진 모습으로 변했고 행여 묶어 키울 땐
깨무는 악력이 새끼 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픔 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을 주고 예뻐해 주면
반기며 주인을 따르는 것에 한 참 매료돼
아낌없이 귀여워 했던 기억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관계란 생각이 주억거릴 때
그럴 때마다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경계지의 파수꾼
영혼의 전령자
노약자의 재롱둥이 등등
고양이에 대한 대변들은 이어령비어령일 만큼 많다
그 고양이가 난간에 앉아 있다
무슨 깊은 생각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