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외톨박이

이인갑 어른

濟 雲 堂 2007. 3. 16. 01:13

한 직장에서 78년을 몸담고 있는다는 게 어느 때는 괴로웠을 것이고

어느 때는 지순하기 그지없는 행복이었으리라

 

창영보통학교를 2년 다닌 학력이 전부였고

아홉 살 때에 영화관의 잡일을 하면 배주림을 면할 수 있다기에

발 들여놓은 인천의 애관극장

 

광대 노릇도 해봤고

용동권번의 이름 난 기생과의 사랑 한 판

일제 징용 때는 큐슈 탄광에서

해방되고나서 당대의 액션배우 장동휘와 쌈박질 한 사건

한국전쟁 때 영사기를 땅에 파묻고 토굴에서 숨어 있던 기억 등등

 

일련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칠 때

쉬어 꼬부라지고 어눌한 목소리로

"자네가 내 평생을 뜻 있게 만들어 줬어" 라고

몰고온 자전거를 멈추고 툭 내뱉으신다

 

85세에 받았던 위암 수술의 여파인지

중첩되어 다가오는 불경기의 피로 탓인지

핏기 없는 얼굴

 

"어디 맛있는 떡 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