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우공이천

濟 雲 堂 2007. 3. 15. 12:28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지금으로부터 이천 사백 여 년 전 열자(列子)라는 인물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이다. 지독스럽게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 우공이라는 90세 노인이 태형과 왕옥이라는 거대한 산으로 인해 통행에 불편함을 겪게 되는데, 자자손손이 길을 내다보면 언젠가는 평편하게 길이 닦여지지 않겠느냐며 주변의 혀끝 차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파내려갔다는 데에서 기인된 말이다. 이 이야기를 전한 열자(列子)의 의도는 분명하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함에 있어 그 일이 아무리 험난하고, 설사 남이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꾸준히 하다보면 하늘도 감동하여 목표했던 일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요즘처럼 옳은 일에 대한 부단한 실천과 용기가 간절히 요구되는 시기도 없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체제 안에서 제대로 용 한번 쓰지 못하는 민초들의 삶 안팎이 불안하다 못해 위태로울 지경이다. 인천 인구의 절반 이상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마당에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괴물’과도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해법은 엉킨 실타래처럼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꼼꼼하게 풀어내자니 시간이 더디게 걸리고, 마구잡이로 잡아당기자니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자존의 끈마저 놓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평의 진산인 계양산 일대에 민초들의 각박한 삶을 조소하듯이 번듯한 골프장이 건설된다하고 인천역사의 모태인 문학산에 평화를 열망하는 민초들의 염원을 무너뜨리는 미사일 기지가 다시 조성된다는 소식은 인천 시민에게 천석의 짐에 만석의 짐을 얹히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인천을 기반으로 삼고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나 자유무역협정의 의미가 허깨비 같은 존재로 보일지 모른다. 감도 잡히지 않는 딴 나라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골프장 건설이라든가 미사일 기지에 대한 현실감을 굳이 표현하면 삶이 버거워 자각조차 할 수 없을뿐더러, 아픈 다리 쓸고 보니 남의 다리를 보듬고 있더라 할 정도로 관심의 깊이 또한 엷기만 하다.  인천을 좀 더 관심 있게 뜯어보면 위에서 말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난형난제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총체적인 어려움을 떠안고 살아가는 도시라는 것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문제라는 것은, 삶이 비롯되면서부터 발생하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이란 ‘삶’과 ‘앎’ 즉, 삶을 알아가는 존재란 의미로도 알 수 있듯이 긍정적 의지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때 희망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인천을 한몸주의(가이아 이론)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반시대적, 비민주적, 반문화적, 반환경적, 비합리적 행태들이 종양처럼 퍼지는 이 위기상황을 방치하고 차단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인천이란 사회를 싸잡고 주무르는 핵심층들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우선적으로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다던가? 모두가 제 한 몸인 것을. 제 몸 다스리듯이 꼼꼼히 되짚어 인천을 살릴 일이다. 프로타고라스의 명제가 아직도 유효하다면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해”야 한다. 주지했다시피 인천은 태형과 황옥이라는 거대한 산에 둘러싸여 여차하면 겉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많은 도시이다. 역설적으로 비상할 수 있는 여지도 그 만큼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교훈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아니 우공이천(愚公移川-인천)이란 새로운 발상으로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해야할 것이다. 필자가 열자(列子) 이후로 이천 사백 여 년 동안 서슴지 않고 사용해온 아시아 문화권역의 먹물장이들과 다를 바 없이 뻔뻔스럽게 재탕 삼탕 인용하는 것이 여간 가슴 쓰린 게 아니지만. 이를 어쩌겠나! 내 안의 우공이, 우리들 속에 우공이, 먼저 웃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웃지 않는 미래의 거울 앞에 서서 오늘도 비장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