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노시인(老詩人) 부부의 아침
濟 雲 堂
2007. 3. 14. 00:11
이른 아침부터 바깥 나드리 채비를 하고 계셨다
그렇게 외출복으로 갈아 입은 채 앉아 있기를 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디론가 외출할 요량이 남아 있던지 점퍼를 벗지 않고 계셨다
쌀쌀한 꽃샘 추위 때문에 입고 있을 뿐이지 그냥 앉아 있노라고 말씀하시지만
내심 강원도 어느 두메를 가겠노라는 말을 차마 꺼내진 못하셨으리라
당신이 온 나라 강산을 훑어 시심의 뿌리를 캐오는 동안
나의 작은 우주 안에서 키운 묘목들도 깊이 뿌리를 내렸다우
두 노시인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주름에 어린 옛 이야기를
슬쩍쿵 내려 놓지만 주름의 깊은 내막은 차마 펼쳐보이지 않으셨다
이번에도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당신의 시가 실렸다면서 건네주시는데
책보다는 손수 부쳐주신 빈대떡 접시에 먼저 손이 가고 말았다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구름 한 조각 걸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하얀 눈 몇 송이 앉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뾰족뾰족 초록잎 돋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빨간 열매 달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한 마리 산새 쉬었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