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다시 난로에 불을 지피면서

濟 雲 堂 2001. 5. 8. 19:34

행인들의 발걸음이 깊어 질 무렵
나의 愛馬 수퍼-리드는 주인이 얼른 올라타기를 기다려 왔는지
고삐를 당기는 순간, 팽 하니 앞으로 달려갑니다
어둠 속으로 질주하는 덩치 큰 차들이 신호 대기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나의 애마는 당당하게도 그 앞을 지나가지만
굉음 사이로 쏟아 붓는 엄청난 빛의 세례를 받는 순간
한 인간의 몸은 이렇게 작아지고 초라해 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갑니다.

중국 靑島를 출발해서 국제 여객 터미널에 도착한 산만한 크기의 배는
넓적한 배를 부두에 깔아 놓고 길고도 지루했던 항로의 피로를 풀 듯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립니다.
흔들거릴 때마다 봉긋이 솟아오르는 수면의 조각마다 빛이 반사되면서
어둠의 깊이는 더욱 깊어 가고
하루 동안 뭍이고 다녔던 피로도 함께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겨울의 부활!
차마 잊고 싶었던 소슬함이 이부자리 깊이 박혀 있던 새우잠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머나 먼 항해 일지를 끝냈을 법했던 황사 바람이 멈추고 난 후
맑게 변해 버린 한반도 서남쪽 만국공원 끄트머리에는 비둘기도 잦아들고요
비류 왕자의 옛이야기가 철책으로 감겨져 있는 문학산 정상도
그 옛날 불려지던 배꼽 모양의 산 그대로인 것을 보면
봄날의 통과의례인 황사 바람도 가실 줄만 알았는데...
수도는 얼었구요.
청소의 발랄함이 묻어 있던 젖은 거리는
유리 조각처럼 반짝거리는 아침이었습니다.

다시 난로에 불을 지펴봅니다.
쇠붙이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가만가만 불꽃이 일어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물은 팔팔 끓고 있을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