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 雲 堂
2002. 11. 20. 22:32
지난 주 일요일.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간 곳은매주 월요일 강의를 하는 화도진 도서관이었다.수 천년 역사의 숨결과 한 민족의 고난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강화도 역사 기행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정확하게 9시에 맞춰서 달려갔지만덩치가 커다란 버스 한 대만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혹시, 내가 시간을 잘못 알고 당도한 것은 아닌지도서관 관계자에게 재차 물어보았지만 얼굴만 붉히고 있을 뿐따로 대답을 준비하지 않은 모습으로 계면쩍어 하기만 했다9시 30분을 넘기고 10시를 겨우 막 넘어설 무렵아이들이 하나 둘 버스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양말도 안 신고, 거기에다가 슬리퍼를 '찌익 찍' 끌며 온 놈을 시작으로얼굴은 하얗게 닦긴 했는데, 목둘레는 거멓게 떼가 끼인 놈내가 어렸을 적에나 경험했던 기계충에 감염되어 군데군데 머리털이 빠진 놈 등등하나 같이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아이들이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아저씬 누구세요?""난 너네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려줄 선생님이다" 라고거창하게 대답을 했지만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아이들처럼저희들끼리 쑥떡거리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장난치기 시작했다아이들의 인솔자는 '버터님'이었다그네들은 이름을 부르는 대신에 서로에 별명을 붙여주었는데지금 기억나는 이름들은다른 아이들 보다 성숙해 보이고 몸이 제법 뚱뚱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조개님'이었고슬리퍼를 신고 온 아이는 '나비님'이었고안경을 썼고, 기행하는 내내 내 옆에 붙어서 말참견을 했던 아이가 '다이저님'이었다'다이저'는 '그랜다이저'를 줄여서 부르던 호칭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지만대개의 아이들은 이런 식의 별명을 부르고 있었는데듣다보니 꽤나 정감이 가는 이름들이었다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과는 끈끈한 사이로 발전했다안내 및 설명은 안중에도 없고오로지 나와 함께 노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 되고 말았다나의 장난끼도 한 몫을 했고나의 외모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도 가실만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나의 외모가 아이들에게 꽤나 무섭게 보이고도 남는 모습이질 않은가?목까지 내려온 턱수염에 입술을 가리는 콧수염 게다가머리까지 묶은 모습에 계량 한복 차림이었으니...점차 아이들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재밌게 들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왜냐하면,내 등에 한 놈이 매달리면 다른 놈도 매달리겠다고 하고다른 놈이 또 매달리겠다 하면 또 다른 놈이 매달리겠다고 하고,서로들 붙잡고 다투는 통에 번번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강화 역사관 뒤뜰에는 보호수로 지정 받은 탱자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손에 가시가 찔리는데도 탱자열매를 따와 내게 선물하는 우직스러운 놈도생겨나는 분위기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하나 같이 맑고 정이 많은 놈들이었다마치 현실의 장벽들을 스스로 감내라도 한 듯 어른스러운 모습들이었다어쩌면 남보다 일찍, 세상은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지만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넌지시 메시지를 남겨주는 듯한 인상이었다어쨌든 아이들과 하루종일 함께 어울렸고 몸은 피로했지만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어느덧 화도진 도서관에 도착했다아이들과 작별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었다그 때 한 놈이 내게 다가왔다"대장님. 우리 언제 다시 만나요?""..................................""대장니임~. 우리 언제 다시 만나냐니깐요?"".................................."아이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은 '대장님'이었다.그 후 난 스물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구멍가게로 가서아이스크림을 한 개 씩 나눠주면서약속은 못했지만 다음에 꼭 다시 보자고기어코 말끝을 흘리고 말았다.밤의 대화 :: 대장 ~ 이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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