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솔빛 마을을 지나며

濟 雲 堂 2002. 8. 31. 17:20
꼬리가 잘려나간 까치 한 마리가벚나무 사이를총총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다볕이 들기 시작한 나뭇가지에서는울음을 멈춘 종달새들이젖은 나뭇잎처럼 떨고어린 계집아이의 젖멍울을 닮아버린꽃 봉우리들이부끄럽게 솟아나 있는 아침에낮은 건물들은밤잠을 설쳤는지아직도 안개를 뒤집어 쓴 채 뒤척이고 있다봄의 추억을유난스럽게 간직하고 있던수도국 산머리는어느덧 초고층 아파트로 세워졌고가난한 주민들이 남기고 간 빛 바랜 현수막 한 장이쓰레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날 무렵중학교에 갓 입학한 사내아이인 듯헐렁한 교복을 입고서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봄이 게워낸 것은다만, 조금 더 밝은 빛이었을 뿐무표정인 채 등교하는아이들의 노란 이름표가서럽게 빛나고 있다수도국 산동네가 철거되면서솔빛 마을이라는 이름의초고층 아파트로 바뀌었다.아직 이주를 하지 못했거나재개발을 하지 못한 옆동네에는허름하게 나이만 먹어가는 낮은 집들이게딱지처럼 붙어서 있고...
밤의 대화 :: 이종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