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스승열전 3 -이종훈 씨-

濟 雲 堂 2002. 8. 31. 16:57
지금은 모두 떠나버리고 없지만 형제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네 째 형님 이종훈과 막내인 내가, 여기에 남아 있습니다자그마한 대한민국 땅 덩어리에서 살아가는여느 사람들의 얽힌 사연들이란 게"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이라고 도매금처럼 넘어가지만개개인의 가족사를 역사의 중심으로 놓고 보았을 때그 중심은 주변의 중심도 아니고, 중심의 변두리도 아닌존재하는 그 자체로 봄이 우리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권력 또는 기득권을 지닌 계층들에게 항변도 해 봅니다만...이종훈씨는 나의 친 형님입니다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관계로 영어 아닌 영어의 몸으로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지만 한 때는나의 훌륭한 이야기꾼이었고 보모였고 집안의 힘 센 일꾼이었죠가족사라는 게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설명이 주종이 되겠지만개인을 놓고 보았을 때, 저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셨던 형님을내 마음의 스승으로 모심에 결코 모자람이 없음을 먼저 고백해 봅니다살림이 매우 곤궁했던 어린 시절에 들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과지금까지 눈에 익히고 친근하게 바라 볼 줄 알게 해주었던수많은 꽃들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아직 내 기억의 어항에서유영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내가 아주 어렸을 적인데당시에 '인천고등학교' 연대장이었던 세 째 형님과'송도중학교'에 다니던 네 째 형님께 어머니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었는데 큰 형님은 '신부수업'을 받는 중이었고둘 째 형님은 군대에 가 있는 중이라 두 분 형님께 시위가 떨어졌죠묵묵히 화살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긴박한 순간이라고 추측을 하지만 말입니다"너희 둘 중에 누가, 막내를 일 년 만 맡아서 키워줄래?" 하셨더랍니다그 때 다섯 째 형님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기 때문에두 형님 중에 누가 맡느냐가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겠죠네 째 형님과의 각별함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어린 나를 업고 논다든지 밥을 먹인다든지 등등형님의 넓은 등에서 거의 어린 시절을 자라게 됩니다.그런 형님이 군대 제대를 얼마 앞두고머리에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것이형님을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하는 운명이 되버렸습니다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현재 형님은 음성에 계십니다. 무극을 지나, 생극을 거치게 되면한 눈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읍내 '음성' 말입니다.몇 일을 형님과 함께 보냈습니다. 역시 불의의 사고로 말입니다의도?된 사고였지만 형님은 전혀 기억을 안?하고 계시기만 하죠거의 주기적인 것 같은 데,몇 년 전에는 손목 시계를 그 후 5년이 지나서는 숟가락을,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난 며칠 전에는 칫솔 한 개를 먹고탈?이 나서 중환자 실에 입원하고 말았죠.아직도 형님은 뭐든 소화시키고 싶은 혹은 뭐든 먹고 싶은충동이 있었나 봅니다.머릿결을 쓸어 넘겨 드리면서 눈물이 울컥 쏟아집니다.
밤의 대화 :: 이종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