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남성성의 빈약함을 놀리듯 하는 말이 사내구실을 못한다는 말이다. 요즘 같으면 인격침해라든지 성적모욕감을 주는 단어로 사법처리의 단초를 제공하는 혐오언어로 구분돼 잘 사용치 않는 용어이다. 예전에는 기운을 제대로 쓰지 못해 약해빠졌다는 표현으로 혹은, 자식을 두지 못한 남편들을 비하해 부르던 일상어였다. ‘자기가 하여야 할 맡은 바의 일’이란 사전적 정의가 뒤따르는 ‘구실’은,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판독하기 어려운 단어라 할 수 있다. 한자말에 대입해 실하게 갖췄다는 뜻으로 ‘구실(具實)’이라 쓰는 것은 그나마 면목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단어이다.
구실은 지난 번 칼럼에서 ‘별’이란 말의 뿌리를 제공했던 단군신화와도 그 연관성이 깊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는 환웅과 겨레붙이로서의 곰족과 호랑이족 그리고 쑥과 마늘이다. 재세이화 홍익인간이란 기치를 올리게 된 결정적 사건이 구실이란 단어의 생성과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말이 된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구체적 공간, 다시 말해서 한 공간에서 쑥과 마늘로 백 일 치성을 올려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빎의 공간은 다름 아닌 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굴속의 일이 ‘굴일’이 되고 발음의 편리성과 ‘ㄹ’탈락 현상에 따라 ‘ㅇ’가 ‘ㅅ’으로 바뀌게 되어 ‘구실’이 된 연유이다.
굴의 대표적 이미지는 움푹 파인 공간을 의미하고 있다. 구덩이와 구멍은 굴의 ‘ㄹ’탈락 변천과정의 다른 형태이지만 같은 의미소를 지닌 단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말 사용에 있어서 팁과 같은 존재어가 ‘고맙습니다’라는 단어이다. 백일 주야로 재세이화 지복을 비는 가운데 비로소 사람이 된 겨레붙이들 특히, 곰을 숭상했던 집단이 하늘의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겸양되게 고백하는데, 그 말이 바로 ‘나는 전에 곰이었습니다’였다. 이 말은 다시 줄임말로 ‘고맙습니다’로 바뀌게 되고 오늘날까지 후대에게 감사의 표현과 자신을 낮추되 정체성을 고백하는 인사말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구실’과 ‘고맙습니다’를 상용하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독자들에게 설명했음을 알려둔다. 거기에 특별한 종교적, 민족적 이유를 들어 한글의 우수성을 포장하려 했던 의도 또한 없음도 밝혀두고자 한다. 다만 같은 말을 쓰는 한겨레가 사는 공간은 다를지언정, 공통의 언어로 소통을 하고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모색한다는 공통분모 앞에, 감춰져 있던 씨감자 캐듯 동질어의 즐거움을 키워보자는 뜻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