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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되기 위하여

濟 雲 堂 2015. 1. 15. 12:24

사람의 족적이 드문 깊은 산(山)일 수록에 나무는 곧고 굵게 자란다. 어떻게 작심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일정(一正)이란 법명의 승적을 가진 같은 과(科) 친구랑 백두대간을 종주했던 적이 있다. 설악 진부를 출발해 태백, 문경, 임실에 이르는 산길에 석 달 가까운 겨울 방학을 오롯이 바쳐야 했던. 얼어 죽을 뻔 했었고 배고프고 힘에 겨웠어도, 따스한 햇살에 의지해 벌렁 드러눕던 낮잠은 그야말로 꿀맛이던 기억도 있다. 촛불 하나로 토굴을 지키는 수행자에게 고구마를 얻어먹기도 했으며, 단출한 암자에 들어가 며칠 씩 묵기도 했고 할머니 혼자 사는 초가에서는 잔일을 해주고 라면을 얻어먹기도 했었다.

 

  어언 삼십여 년 묵은 낡은 기억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없이 많은 산과 계곡을 지났어도 머릿속에 말뚝처럼 박혀 있는 최종 이미지는, 한 겨울 간신히 푸름을 지키고 있는 익명의 정체들이었다. 산이 높으면 그 만큼 계곡도 깊었다. 물이 나면 영락없이 내와 강이 되어 흘러가지만, 광대한 풍광을 지키며 우뚝 서 혹한마저 당해 내고 있는 나무를 보며, 한 자리에서 태어남과 죽음을 동시에 겪고 열매와 나이테마저 늘려 지상을 이롭게 하는 이 독특한 생명체에 대한 경이(驚異). 그런 나무를 닮고 싶어 했던 청년의 소망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채 2015년 동토 한 가운데에 서성이고 있다.

 

  신미년 새해를 맞아 각종 매체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올리며, 과년을 반성하고 생활의 의지를 환기시켜보자는 차원에서 신년화두를 발표하는 일이 다반사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전국교수협의회(일부)’라는 이름을 내걸고 소박하게 발표했던 것이 이제는 정치권을 위시해 지자체 단체장과 재벌들도 가세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 되었다. 각자에 처한 현실적 사안에 입각해 신조어로 또는 본떴을 이들 사자성어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애매모호하되 긍정적이고 전통에 충실하되 해학적인, 이른바 성어(成語)의 알레고리에 충실하다는 점이 돋보인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정치 경제 복지 교육 등의 난맥에 부닥쳤어도 희망의 탯불을 꺼뜨릴 수 없다는 의지를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혼란스러움을 지혜로 바로 잡아 인생을 빛나게 한다.’는 풀이를 사자성어로 하면 지랄발광(知剌發光)이 된다. 언 듯 불경스러워 보이지만 통상적 금기어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어 말의 재미를 한 층 고조시키고 있다.

 

  난관일 수록에 돌아서 가고, 난제일 수록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가자는 데에 모두 공감하면서, 막상 이를 해결하려면 장문의 해제와 다수다양의 해법이 피치 못하게 나열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늘 찾아오는 ‘새해’이지만 과거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운 ‘그 새해’는 언제나 같은 ‘숫자’의 뒤섞임에 불과한 것이 우리의 현재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친구가 또 이민을 가고 말았다. 나무가 되기 위해서, 진짜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겨울도 거쳐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이참에, 인천 지역사회에 몸과 마음을 바치고도 지난한 삶, 뿌리 채 박아 열매를 맺고 나이테를 늘려 재목이 되려하는 영웅적 소시민들에게 신미년 사자덕담 한 말씀 올리고 싶다. 진자나무(眞者拏務), 즉 ‘참된 것을 향해 진력한다면 기어코 붙잡는 한 해가 된다.’ 아울러 민생의 책무를 위임받은 위정자들에게도 진자나무(眞者裸撫) 즉, ‘참된 것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면 허울을 벗어던지고 보듬는다.’를 따끈한 새해 덕담으로 한 켜 더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