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존경받는 사회의 이단(異端)들

濟 雲 堂 2014. 12. 18. 17:24

영국의 인터넷 여론 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13개국 13,895명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보니, 세간에 꼭짓점으로 이름을 올린 유명인을 제외하고 공통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존경하는 인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세계 젊은이들의 건강성을 지탱하는 흔들림 없는 주춧돌과 같은 결과이다. 다만, 스포츠계의 아이콘, 자본가, 연예인, 정치인 등이 존경의 극점을 차지해 있어 대상의 추이가 다변화되었고 다소 그 무게감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어쨌든, 희생과 지칠 줄 모르는 봉사, 헌신, 발명과 발견 등이 주를 이루었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존경의 ‘바로미터’가 현재의 변화상을 반증해 주고 있다.

 

 부모라는 이름은 존경의 시금석이다. 삶의 기준이 된다. 양육과 배려, 끊임없는 기원, 절대적 책임감 등으로 무장한 강력한 인간관계가 가족이다. 그러한 가족의 집단적 구성체가 우리 사회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 인천사회는 과연 존경받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유한성은 현재의 유한성이고 역사의 교훈은 언제든 닥치게 될 혹독한 미래의 간난을 극복케 하는 좌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일꾼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한 가족 됨의 성원이지만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쪽에서 제왕적으로 존재하는 비현실성을 대다수의 시민들이 감내하면서 사는 게 우리 인천의 현실이다. 가족들이 위임한 대의적 책임과 행복권, 십시일반 거둔 혈금(血金)을 잘 활용하라 했건만, 마치 패권적 착각으로 알고 무지하게 추진하는 일련의 결과물들이 인천 사회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어서이다.

 

 “현재는 훈련과 절도와 고된 노력을 요구한다.”고 존 D 록펠러가 그의 전기에서 말했다. 19세기 말. 월미도에 ‘스탠다드 석유주식회사(Standard Oil Company)’를 만든 장본인이기도한 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깨달음과 절제(반성)와 노력(미래비전)을 기울이지 않는 위정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가당치 않은 주장 때문이다. 실 예로 인천 중구 신포동의 ‘크리스마스 트리문화 축제’ 행사가 그렇다. 원칙과 형평성을 지키려는 의지는 고사하고 중구청장과 중구의회의원들, 예닐곱의 목회자들, 동네가 밝아졌으니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냐는 주민들이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설치가 지역사회를 더욱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축제를 추진하는 데에 들여야 할 비용에 불법과 탈법이 겹쳐 있지만, 이를 행정적으로 거부하지 못한 채 억지로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들도 딱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이다. 이래서 어디 존경받는 사회가 되고 떳떳한 부모가 될 수 있겠단 말인가. 더욱이 크리스마스는 나눔과 배려와 즐거움이 혼합된 세계 13억 기독교 신자들의 대표적 축제인데, 오히려 부끄러운 현실을 덮어쓰고 외향만 치장하려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예수를 존경하고 그 삶의 행적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통시적인 가족의 성원이라면, 불의에 눈을 감고 죄악을 키우는 것에 앞장서는 사람들도 결국 가족이기에, 통감과 회한이 한파처럼 몰아치고 있는 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