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의 그늘
설 목전에 정송화 시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한 치의 반도 안 되는 두께지만 표제는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담은 책이었다. 쌀가루 범벅인 채 넙죽 받아드는 게 안쓰러웠는지 다소곳 계단에 올려놓는 모습이, 영락없는 노모의 그 것이었다. 설 대목을 마치는 대로 읽겠노라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건성건성, 흰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복지부동이던 책이 비로소 눈에 띈 것은 피로가 거의 가실 무렵이었다.
「모 교회 50년사」. 반세기 성상을 맞은 공간의 살림살이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기회다 싶어 반가이 책을 펼쳐들었다. 개인적 삶과 집단적 삶이 종교적 신념 안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인천이라는 지역에서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엿볼 수 있으라는 묘한 흥분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쪽을 향해갈 즈음, 별 만큼 쏟아지는 의문부호들이 이미 책을 덮어버리고 난 후였다. 여느 <50년사> <100년사> 등 독자적 공간의 역사를 오밀조밀 풀어 담은 책에 익숙해 있는 필자에게 「50년사」라 쓰인 책의 무게감은 수수깡만큼이나 가볍고 남우세스러웠다. 구체적인 내용과 실망스런 부분 또는 누락된 사실에 대해 조목조목 너스레 떨 것은 없지만, 과거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 정신과 비교해봤을 때 그 차이점이 너무나 극명해 있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이를 주제했던 기관의 <승정원일기>는 오늘 날, 기록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표가 되고 있다. 6천 4백 만여 자와 2억 5천 만여 자가 기록된 규모를 보나, 내용의 충실함은 물론 사료적 가치가 인정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를 훨씬 뛰어넘는 경이로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실 예로, 승정원의 주서를 피해 신하들을 따로 몰래 모아 회의를 했다는 것부터 매화(똥)를 본 횟수, 전국의 지진 발생 수 등에 이르기 까지 문자화 할 수 있는 일체를 낱낱이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기 때문이다.
6. 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와 교육에 뜻을 둔 지역사회의 일꾼들이 요즘 앞을 다투어 책을 출판하고 있다. 책의 내용과 기획 의도는 명약관화하지만 책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의 슬로건인 ‘모두를 위한 책’에 걸맞는지 의심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세계 책의 수도라는 상징적 의미에 빗대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때가 때이니만큼 봇물처럼 쏟아지는 현상 또한 묵과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전 선거 때 쏟아졌던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분리수거의 대상이 되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현장을 목하 목도해서이다. 어차피 이러한 현상도 ‘모두를 위한 책’이라는 의미에서 일부 업자의 몫으로 돌아가 득이 되는 상황이고 보면 묘하게 돌아가는 세상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거울 같은 존재이다. 믿음과 신념의 외화가 책이라면 허투르거나 과대 포장되고 인성의 본질이 왜곡된 책은 언제고 들통 나기 마련이다. 거울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인 타자의 시선 또한 여과 없이 반사시키기도 한다. 모 교회가 출판한 「50년사」나 지역사회의 일꾼들이 홍보 및 체면치레용으로 만든 책의 부정적 이미지도 어차피 반면교사라면 맹자의 말마따나 ‘선악을 모두 나의 스승’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처지는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상들은 지독히 반복적이고 지극히 자아도취적이라는 데에 있다. 올해도 여지없이 입춘이 왔고 삶의 굴레와는 상관없이 도처에 새순이 돋아날 것을 믿으며 ‘생명’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5백년 간 실사에 목숨 걸던 주서들의 붓뚜껍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