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영빈관은 재고되어야 한다.

濟 雲 堂 2013. 4. 14. 11:16

 

 

 

 

지난 3월 20일. 인천의 <‘어른’을 그린다>는 칼럼을 올렸었다. 인천이 떠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에 대해 책임과 명예 그리고 어른답고 성숙하게 풀어가자는 필자의 바람을 담았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못가, 붓 끝도 마르기 전에 황당하고 무례한 사건이 인천 사회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자유공원에 있는 역사자료관을 영빈관으로 만든다는 소식이다. 지난 세기의 관료적이고 전근대적이었던 시장 관사를 혁파해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약속을 지킨 최기선 전임 시장의 공약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인천은 정체성이 없는 도시, 역사와 문화가 일천한 도시라는 오명이 잔존하는 가운데 정명 600년, 미추홀 2000년을 기리는 행사들로 들썩이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를 솎아내고 재현하게끔 의미를 부연한 역사자료관의 존재감과 위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공약의 무너짐, 역사자료관의 상징성, 게다가 그 자리에 영빈관 운운한다는 걸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천은 있는데 정작 ‘인천의 정신’은 없다는 결론과 맞닿는다. 파약, 불통, 권력남용을 일삼던 군부정권의 행태를 답습하는 이 낯 뜨거운 장면은, 원도심 활성화를 꾀하고 인천을 찾는 국빈을 대접하는데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내용으로 포장돼 있었다.

 

영빈관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자주독립을 염원했고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세대에게는 뜬금없는 게스트 하우스에 불과할 뿐이다. 일제 강점기 말엽에 관사와 영빈관을 마련해 식민지배 공무원에게 편의를 제공했던 구실로서, 군부독재정권의 밀실정치의 대명사로서 존재가 그 시원이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이 만든 성남시 일해재단 영빈관이 <지구촌 체험관>으로 바뀐 사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칭따오 독일 영빈관과 도쿄의 영빈관이 지정문화재와 국보로 활용돼 자국의 근대 문화의 풍모를 드높이고 지역사회에 일익을 더해주고 있는 차원에서 시민과 밀착돼 있고 개항도시 인천의 무게감을 그나마 보여주고 있는 역사자료관을 영빈관으로 만든다는 것은 분명 구태적이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1909년에 지은 도쿄 영빈관처럼 이탈리아 대리석, 프랑스 산 샹들리에 400개, 초호화 게스트 룸 40개, 500명을 한꺼번에 치르는 리셉션 장소 등 당시 1000억엔 들여 만들어 놓을 게 아니라면 차라리 소박하나마 배짱 있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천시 역사자료관으로 그냥 남겨두는 게 백번 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와 시대의 같은 길을 바라 봤을, 시 행정부와 송영길 시장이 인천의 난제로서 해결할 방침으로 세운 건 아니라고 믿는다. 대황해 시대, 평화와 민주주의의 정착, 아울러 송도 청라 영종을 글로벌 도심으로 성장케 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와 다름이 없어서이다. 적재적소에, 더군다나 주어진 공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몰상식과 부조리한 행정, 시민에게 돌려진 의미 공간 즉 ‘인천의 자존심’이 팽개쳐지는 현장을 또 목도해야 하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 가업 일로 자유공원 시장 관사를 자주 드나들었었다. 배달과 수금을 위해 출입하려면 삼엄한 경비를 거쳐야 했고, 견고한 담벼락이 끝나는 맨 구석 골목을 통해 주방까지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고 다녔었다. 그랬던 공간이 고즈넉한 정원과 황해의 호연한 기상을 느끼게 해주는, 285만 시민의 묵힌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명소가 되었다. 역사의 불모지 인천을 아우르고 치유해주던 <역사자료관> 십년은, 총 방문자 30만 명의 족적을 보더라도 쉽게 증명되고 있다. 시청사 증축이 재고될 만큼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또 다시 수십억 들여 허세를 드러낼 판국을 좋아할 시민은 없다. 무엇보다도 미래도시 인천의 정신적 <어른>을 그려가는 시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는 시대착오를 넘어 불명예스럽고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