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기
“행복하십니까?” “진짜 행복하신가요?” 라고 스페인 젊은 친구 제라드 콰테로는 연거푸 물어왔다.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떨결에 그렇다고 답해버렸지만, 집에 돌아와 이부자리에 누운 내내 석연찮은 떨떠름함이 눈꺼풀을 펄럭이게 하였다. 행복하냐고 물어온 적도 물은 적도 없는 금단의 열매 같은 화두를 졸지에 짊어진 어깨의 무게감이 천근만근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누라와 자식들에게조차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음은 물론, 필자 자신에게도 엄격을 넘어 금기의 단어로 단정했던 행복이란 단어를 툭 던지고 떠난 제라드가 갑자기 ‘웬숫바가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삶의 최고 덕목으로 마음에 품고 있던 금언이 누군가에 의해 쉽게 까발려지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가볍게 물어온 만큼 평이하게 대응하지 못한 자괴감이 되레 부끄러워서였다. 이후, 그러한 질문을 예상해서 답변을 준비했는데, 상황에 따라 A안 B안으로 나눠 즉문즉답 하자는 거였지만 막상 준비해놓고 보니 눈 꼬리에 ‘비겁’과 ‘위선’이라는 주름이 하나 씩 더 늘어나 있었다. A안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려고 노력한다.’였고, B안은 ‘행복, 그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인천서 사는 게 행복하십니까?” “인천에서 사는 게 진짜로 행복하신가요?” 라는 질문이 독자들에게 던져진다면, 과연 어떤 답변이 쏟아질지 궁금하다. 인천이 총체적 난관에 빠졌다고 말하는 점잖은 그룹은 차치하고 당장의 생계와 교육과 복지 혜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절대다수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얼토당토 배부른 소리라 치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재차 묻고 싶은 것은, 필자도 인천에서 산다는 게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신포동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된 운명이라 여겼던 때가 있었음이다.
도시의 성품으로 보나 시민의 내면과 구성원들의 정체감 등으로 봤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희망의 빛줄기를 품었으되 언제고 ‘먹튀’ 뒤의 성화봉에 그을린 얼룩만 닦느라 쇄골 빠지게 버둥대는 무지렁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살만한 도시, 살고 싶어 안달 난 도시, 내 살과 뼈를 묻고 싶고 그런 영혼이 존중받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호기어린 다수의 시민사회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인천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재리에 밝은 사람들과 철새 도래지쯤으로 아는 사람들은 이미 타역에 미래의 보장처를 마련해 뒀을지도 모를 ‘행복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과 관련된 총체적 이름을 빌어 정치와 사업에 성공했다는 사람치고 각자의 고향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공장과 땅과 집 등 보험을 들어 놓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난데없이 ‘고향타령’한다고 냉소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인천이 저당 잡혀도 살아날 구멍이 있는 소수사람들은 바지저고리 한 벌 내려놓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이마저도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그나마 인천에 살고 있을 때 더 잘 살아주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인천에서 행복 찾기’운동을 구상하고 있다. 행복감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다혈질적이지만 지역차원에서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그른 것은 재고하게끔 제언의 나팔이라도 불자는 작은 뜻도 담겨있다. 어차피 인천은 태생 자체가 대의의 땅으로 태어났음이다. 오죽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황해라 하지 않았는가. 그 짭짜름한 속내에서 진주처럼 품어낸 소금의 진가가 이미 누천년 증명돼온 땅이 아니었는가. 신포동에서 60년째 좌판에서 떡을 만들어 파는 권 씨 할머니께 오래 계셔주셔서 고맙다고 짬뽕 한 그릇, 아니 행복 한 그릇을 대접해 드렸다. 비석처럼 남은 앞니 하나에 웃음 한 줄기가 헐겁게 퍼덕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