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예의

濟 雲 堂 2010. 12. 17. 22:52

 

 

"예를 갖춘 것이 아니면 상대하지 마라"고 꽁쯔(孔子)가 말했다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면 非禮勿視라 일렀다

 

보지마라

예가 아니면

 

그러나, 그조차

보이지 않는다

너 또는 나로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이

하여, 눈에 뵈는 게 없다

 

이런 세태에

정체는 안갯속을 활보하고

해답의 실마리는 더욱 미소해지고 만다

 

사선을 가로지르는 표적만이 난립할 뿐

도무지 너를 찾을 길 없다

그런데도,

 

1413호 박 씨 아주머니는 혼자다

지지난 해부터 완전한 독립 세대주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싫어서, 혼자인 게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인천 사는 친구의 권유에

부산을 박차고 올라왔다 했다

 

가족이란 이름을 너무도 갖고 싶었기에

고독과 지겨운 독신을 벗어날 길은

가족이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너무도 절박하게 간직하고 살아온 실향민이었기에

길을 만들어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했다  

 

전쟁 고아였지만 부산을 고향처럼 여기고 살았다 했다

홀로 일어선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르리라 면서

바람 이는 풀밭처럼 입술을 떨고 있었다.

비록 국민(초등)학생 둘 딸린 시집일지언정

박 씨 아주머니에게는 천국의 이명(異名) 같은 존재였기에

이십 여년을 행복하게, 정녕코 행복하게 살아 왔다 했다

 

늙다리 지아비

시집 올 때부터 풍을 앓고 계신 시아비

까장까장한 시어미

그리고 딸, 아들

그조차 사랑스러운

가족이었다 했다

가족

 

장삿꾼들 모두 설대목을 마치고

피곤한 육신을 뉘러 뿔뿔이 제 집으로 돌아갔을 무렵

그러니까 지지난 해 정월 초하루였을까

난 데 없이 부고장이 날아들었다

1413호 할아버지였다

그 일로부터 정확히 이십 일 만에

부고장이 또 날아들었다

1413호 할머니였다

"시끄럽진 않았서예?"

"밤 새도록 벽을 두드리더쿠마이..."

치매 때문에 옆 집, 아랫집 모두에게 신세졌다며

죄송하다를 연발하게 했던 그 할머니였다

정확히 한 달 십이 일이 지나고

부고장이 또 날아왔다

1413호 아저씨였다

 

박 씨 아주머니는 현재

비닐 쳐 놓은 노점 한 구석에 합판을 대놓고

개와 함께 살고 있다

 

다리를 찔룩거리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날 일을

내일 떡 해달라고 말을 붙였으되 아랫니 다 빠져버린 것을 보지 않았던들

그냥 넘어 갔을 일이었는데

오지랖 넓은 탓에...

 

보이는 게,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는 게, 다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내게 숙제를 남긴다

sees the invisible

feels the Intang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