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대 문학제」는 무엇을 남겼는가?
각박한 도심을 채우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었다. 다양다종의 행사 깃발들이 거리에 나부꼈으며, 지리멸렬 만신창이가 됐을 법한 시민들 또한 이상기온의 배후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거리를 떠다니고 있었다. 정현종 시인의 말마따나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가을, 원수 같은’ 일부)」 것처럼 풍요와 빈곤의 경계에서 가진 자의 몫이 훨씬 더 큰 현실에서 가볍게 떠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가 비단 인천 시민들만의 문제였을까 마는. 어쨌거나 가을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수 없이 많은 잔치가 벌어졌으며 잔칫상에 차려진 음식은 언제나 어둠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목도하는 계절이 왔다.
얼마 전 인천작가회의 주관 ‘인천 근대 문학제’를 기획하면서, 기존에 치르던 행사에서 조금 각도를 달리해 치러보면 어떨까 고민하였다. 문학 관련자 중심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일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집안 잔치로 끝나버리는 관행을 탈피해 좀 더 시민에 가까이 접근해 가고, 주제에 걸맞게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주제가 ‘근대’에서 출발한 인천 문학의 토대와 배경을 점검하는 차원이었기에 역사에 대한 분석력이 부족한 작가들로서는 역부족임을 절감하고 과감히 역사학자들을 주제발표에 나서게 했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서양인의 자료와 일본인의 자료를 통해 근대시기 인천이 어떻게 묘사돼 있는지 역사학자의 구체적인 시선을 도입했고 한국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인천 관련 대목들을 조리 있게 솎아내 주제발표장의 무게감을 한층 내리자는 거였다. 의도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장시간 행사에 따르는 피로감을 결정적으로 사그라지게 했던 것은 ‘아이-신포니에타’의 애정 어린 연주 지원이었다. 밤늦도록 진행되는 ‘인천의 시와 소설 낭독’ 시간에 난생 처음으로 시낭송을 해본다는 학생들과 시민들 그리고 ‘오혁재 퍼포먼스’는 오히려 작가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골방 책상 앞에 앉아 작품을 쓰던 작가들이 시민의 가슴을 향해 이해하기 쉽고 풍부한 감성을 전달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인천 근대 문학제’는 작가들의 숨은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던 기회가 되었다. 더군다나 폐쇄적이고 서지적이고 독자적일 수밖에 없는 작가 본연의 공간에서 탈피해 일체의 공간에서 시민과 살아 숨 쉬는 호흡을 함께 나눴다는 데에 그 의미는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만성적인 불황과 거품 경제, 난개발에 따른 의기소침으로 만연된 인천 사회와 시민들에게 삶과 꿈을 잇게 해주는 가교 역할은 작가 소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작가는 더욱 더 현실적이어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량을 시민사회에 기여해야 함에 이의가 없어야 한다.
불과 며칠 전,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분이 한중문화관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한다. 은퇴사제인 그 분은 사 년 전 “피아노를 배워 주변사람들에게 피아노 소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되면 연주회를 하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하루 두 시간 씩 맹연습을 했다고 한다. 가톨릭 사제로서 경실연 공동대표, 대학의 교수, 인천대 운영위원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시간들을 치열하게 살아오셨던 분이 은퇴 후, “늘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주변사람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다는 데에 방점을 찍는다. 정의의 실천과 겸양과 검소를 미덕으로 삼아 살아왔음도 부족해 새로운 도전과 하찮을 법한 약속의 실천이 주는 의미가 가히 쓰나미 급이기 때문이다. 있는 것 다 내주고, 없는 것도 만들어서 주고자 하는 마음이 헤아려진다. 느닷없이 숙연해 진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내어줄 것인지 가슴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