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성장의 또 다른 비밀
천기변화의 무쌍한 세례를 덧없이 받고 살았던 무더위가 가시고, 부지불식간 가을의 중심부에 와 있음을 조석으로 느끼고 있다. 무자비할 정도로 들이켰던 액체들이 좌불안석 안달하듯 제 몸의 온도를 낮추기도 전에 소유권자의 몸으로 이식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냉장고에 남아 있는 게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반 쯤 남아 있는 물병. 만족과 부족의 경계에는 사고하는 모든 존재에게 갈등을 유발케 한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가녀리게 떨고 있었다. 그럼에도 절체절명으로 게워내듯 흘렸던 비지땀의 추억을 간직하는 손수건이 빨랫줄에서 버석거리며 말라가는 동안, 무거웠던 고개는 청아한 시월의 하늘로 자꾸만 젖혀지고 있었다.
날씨와 정세의 급변에 따른 사회 심리적 불안증세가 연일 보도되고 이러다가 세상이 어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천을 연고로 삼는 환경단체들과 경제 예술 문화관련 단체들은 목소리의 굵기를 늘려갔고 위정자들도 같은 보폭을 유지하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여 나가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한 움큼씩 쥐어지는 게 눈에 띄고 있다.
인천이란 도시의 생성과 발전의 이력을 맞대놓고 보면 시민들의 자발적인 고민과 참여도가 1995년 지자체 실시 이래로 가장 왕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요즘의 정세이다. 외형적 도시성장주도 행정과 신자본주의 논리의 그늘에 가려 비실비실 힘을 잃어가는 듯해 보였던 민초들의 자생력은 더 이상 의구심의 대상이 아니다. 대표적인 구도심권역으로 인식되는 중.동구 남구 부평구 일대를 중심으로 어렵사리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에게 생생한 희망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주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인천 사회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많을 수록에 사회적 불안감은 그 무게를 덜 수 있게 되고 해결의 실마리를 도모할 천부의 조건이 만들어졌음을 자신하게 됐다.
가슴팍에 손수건을 꿰매고 학교를 드나들었던 소년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성장판 구실을 했던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도 깨닫는다. 신도시라는 이름표가 나붙는 순간부터 핵분열 하듯 고층 건물들이 세워지고 길이 닦여져 잠시 사람들로 복작대다가 귀신 나올듯한 도시처럼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리는 인천의 모습이나, 이십 여만 명의 학생들에게 ‘열공’의 주문을 걸었다가 졸업 후 정처 없는 영혼의 뜨내기를 양산하는 비효율적 교육양태는 같은 몸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인천이 역대 도시화과정을 통해 겪었던 내홍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로기’ 상태였던 일제강점, 한국전쟁, 현대 민주사회로 이끌어주었던 각종 비극적 사건들 그리고 IMF 등을 거치면서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연속되는 ‘완성을 향한 미완’의 몸부림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쯤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지만, 도시화 과정을 통해서 지역사회와 시민에게 돌아온 것은 도시 불균형과 부의 편중, 줏대 없는 교육철학, 정체성 없는 문화행태들이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시민들의 자각과 자발적인 참여로 치러지는 일련의 행사와 모임들은 깊은 감동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도시 삶의 처처를 살기 좋게 만들어가는 시민들의 의지결집은 도시가 균형 있게 성장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다. 인천의 뼈대를 받쳐주고 충격을 완화해주는 성장판의 주체가 시민이기 때문이다. 시월 들어 시민의 다양한 몸짓들이 가시거리에 들어온다. 이른바 ‘축제’인데, 음악 미술 문학 역사 춤 등과 지역 살림살이를 특장으로 삼아 인천이란 바다를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다. 노 젓는 사람이 많을수록 험난함은 쉽게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여름을 견뎌낸 것처럼, 힘들면 가끔씩 하늘을 보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