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편지
濟 雲 堂
2010. 8. 14. 23:07
오래 묵어 가는 사물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이 드는 것은
나 또한 그렇게 묵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맘 때만 되면 느닷없이
말 머리로 떠오르는 것이 편지다
숨이 목젖까지 다다른 내열은
어디 쯤에서 멈추게 될런지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식으로
버팅겨 온 복 더위에
누그러진 바람에
흐르던 땀도 머뭇거리는 저녁나절
편지에 대한 상념은 여지없이 떠오르고 말았다
군에 입대하자마자 하루도 빠짐없이
연서를 보내주던 여학생 덕에(기록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360 통)
포상휴가를 받았고 그 학생을 보려고
학교를 찾아갔더니,
웬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거니는 게 아닌가
연인의 미소를 한 것 짓는 모습에 어찌나 샘이 나던지.
물론 그 이후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만...
아니, 가끔 떠오르기도 했지만...
1984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1948년 조지 오웰의 예측도 그렇게 지나갔으리라
하지만 뭔가 응어리가
이제껏 남아 있는 이유는
얼마전 그 여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니,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아비의 지어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숱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오히려 그 편지를 기억하느냐 반문해 왔다
전화번호는 어찌 알았고
어찌 살고 있냐는 문답이 오가는 동안
중간 세월을 까맣게 잊은 채
그 때로 돌아가
꼼지락거리며 의자를 바투 잡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순한 양의 털처럼
바람이 분다
땀이 마르고 내열이 진정돼 가고 있다
다가오는 시간도 곧 사라지고 말겠지만 오늘,
누군가에게
누구로부터 라고
편지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