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비망록 제 201006호

濟 雲 堂 2010. 6. 29. 00:52


 우리나라 최초로 정식 기상업무를 담당했던 응봉산 기상대가 관측을 시행한 이래, 최고조로 변화무쌍했던 2010년도 6월의 날씨를 가빠지게 보도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한나라당 정권에 칼눈을 보냈던 대다수의 민심이 민주당 또는 진보 성향의 후보자들에게 낙점을 보탰다. 조선시대 때 벼슬아치 추천자의 이름에 임금이 점을 찍으면 낙점돼 벼슬길에 올랐던 그 상황을 상기하면서 유권자들은 임금의 마음으로 낙점을 주었고 그로 인해 인천 정치판도의 중심축이 약간은 바뀌게 되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마음만 완벽하게 준비됐던 ‘나로호’ 발사가 제주 남부 공해상에 쇠붙이 몇 조각만 남긴 채 깨끗이 산화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처참하게 깨지고 돌아온 국가대표 축구선수들과 그들의 경기는 어디로 갔는지 방송국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를 상대한 첫 경기에서 승리한 장면들만 연일 전파에 실어 내보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청년 당원으로서 나치정권에 몸을 담았던 독일 작가 ‘귄터 빌헬름 그라스’의 양심선언 너머 ‘2002년 월드컵 축시’가 불현듯 떠오른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있었고....../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전문)”.

 

 타이어 표피가 째져라, 오토바이 엔진이 터져라. 평소 밉살스럽게 달리던 치킨 내지는 피자 배달꾼의 굉음은 잠시 동안 주춤거렸다. 전국적 유명세를 날리는 신포동 닭 강정을 사려고 40분을 기다려야 했던 평일의 통계를 무시하듯, 한국전이 열리던 날 평균 3시간의 지루한 기다림은 그나마 인내의 미학이었다. 전국적 현상이었다는 후문이 들리는 가운데, 치킨 가게를 비롯한 각종 배달을 일삼는 영업장들은 아예 배달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정도로 바빴다고 전해진다.

 

 장사진(長蛇陣),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엄청난 인파의 콧잔등을 짓밟고 180도 기름지옥으로 몸을 날리는 거룩한 참회를 기꺼이 씹어 삼키려는 최면의 대열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2003년 통계지만 전 세계 240억 마리 가운데 태국과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닭을 몰살시켜 먹을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네 잔인함과 국내에 등록돼 있는 2만 여명의 축구선수들 가운데 간추려 월드컵 격전지로 보낸, 눈물과 땀 그리고 희열의 대리자들이 공식적으로 23명뿐이라는 게 심장의 박동을 거칠게 만들 따름이었다.

 

 ‘권리를 위한 투쟁’과 ‘군주론’ 또는 ‘루돌프 폰 예링’과 ‘니콜로 마키아벨리’ 사이에서 비롯되었던 사회와 나 그리고 법해석은 인천 사회가 여전히 짊어지고 가야할 난관을 어떠한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헤쳐 나가야 하는지 지방자치 정부에게 총체적으로 묻고 있다. 수백 년 전에 던져진 이 고루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아직도 그 진화의 틈새를 채워가는 중이다. 물음의 배경은 공감하는 바와 같이, 선거기간 동안 시민을 임금처럼 떠받들다가도 당선만 됐다하면 헌신짝 대하듯 하고, 구구절절 치적 자랑에, 서너 달 지나고 나면 얼굴 한 번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믿고 선택했던 마음에 어느새 알량한 거미줄이 쳐지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2010년 6월을 마무리하는 28일 늦은 7시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잊어서는 안 될 기록장에 특이한 사건이 수록돼는 순간이었다. 먼 데 바닷바람이 일었으매 바닷가(海畔)에 자발적으로 모여 돛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그 것이었다. <구도심권 구청장 당선인에게 듣는 문화구정>에 남구청장, 동구청장, 중구청장 당선인이 동렬로 앞자리에 앉아 항해를 의논하였다. 초유의 일이었다. 참석자들은 이상기류를 대변하듯 시원한 평상복을 입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내 권위라든가 위압감내지는 오만으로 연출되었던 기존의 틀 감을 사그라뜨리고 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