舌 .썰. 說

꿈을 놓다

濟 雲 堂 2010. 6. 11. 00:46

 

정확한 지명은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그 곳이 강원도 두메였고

키 낮은 개울이 거울처럼 창백하게 흘러

홍천강으로 우르르 몰려간다는 것을

훨씬 후에 알았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기억이 어슴푸레할 뿐

 

톡, 건드리기만 하면

무더기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이

산 끝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스라한 지평 너머 여명은

어둠의 잔여분을 사그라지게 하려는 듯

아침 놀을 사르고

 

무겁게 짓누르던 어둠의 손목이

개천을 열어주었을 무렵

개기름처럼 미끄덩거리던 몸은

비로소 악몽을 벗어던진 듯

물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부풀대로 부푼 종잇장처럼

자갈과 바위에 붙박혀 있던 이끼들은

짐승처럼 달겨들어 신새벽을 겁탈하는

젊은 청년의 맨 몸을 가만두질 않았다

이리 쓰러뜨리고 저리 쓰러뜨리고

광무의 도가니로 몰아가버렸다

 

소름이 돋을 무렵

비로소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강원도 차디찬 무명의 실개천

줄거미 즐비하게 늘어서

생태의 참혹한 유혹이 넘치는 전선

개굴창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였다

 

원효 그리고 일체유심조

해골 같은 나락에서 갓 건져올린

고결한 쓰레기 한 토막이 풍겨대는

무자비한 똥냄새

아, 그러나

 

난생 처음으로 찔레 숲을 보았다

무감녹색 자잘한 형극이 지천으로 깔린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꿈에서나 느낄 수 있고

애인의 살 틈 깊숙히 내재돼

욕망이 헛걸음친 뒤에 찾아든 평온 같은

향내음

 

실전 같은 나날 속에서

늘 현실은 꿈이었기를 바라는

뒷물의 추억은 반복되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고이고

하릴없이 너스레를 떠는 가벼운 말 솜씨에도

웃음은 터져나왔다

별자리 하나 볼 수 없는 이슥한 밤

우연히, 이지러지는 하현달을 바라보며 감동해 하고

나뭇가지들이 서로의 몸을 부비며

사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아랫도리가 묵직해져 온 몸이 비비 꼬이는

깊은 밤이 드디어 지났다

 

꿈을 놓자마자

다시 꿈이 만들어졌다

현실이 되기 위하여

꿈이 되어야만 하는 아침에

그 날

똥물에서 목욕했던 광경과 비슷한

꽃들이

담을 넘어오고 있던 거였다

 

징한 향기

가슴 절절했던 갈망을 갈아엎으며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