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같은 4월에, 누이여!
전화 번호가 바뀌지는 않았을까?
궁금증을 떨치고 전화를 걸어보니
여지없이 벨 소리는 울렸고 동시에
문자 메시지 표시는 깜빡거렸다
여지없이라는 말에 고개가 주억거릴 때는
오랜 기간 안부조차 묻지 않은 무심함과
비교적 가까운 촌수인 오촌 지간에 이럴 수 있냐는
자책성 회한이, 바람 찬 문지방에
대롱대롱 위태하게 매달린 거미처럼
흔들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나야! 잘 지냈어?"
"아! 네, 삼촌. 별일 없으시죠?"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이제 졸업반이겠구나?"
"네, 다들 예뻐해주셔서...... "
다소 상반된 대답처럼 들렸을
"네, 다들 예뻐해주셔서....."가
"이제 졸업반이겠구나"는 질문을
허공에 붕 떠 버리게 만들었지만
목소리를 듣게 된 것만으로도 어떠냐는
일종의 안도를 느끼게 만든 대답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비교적 친척이 드문 벽진 이 씨의 가계도 그렇지만
인척지간이래 봤자 고모 일가가 그래도 근접 친척인지라
무던히 가깝게 지냈던 사촌 정 씨들이었고
그 중에 네 째 누이인 순남의 늦둥이 딸인 지나는
홀로 살아온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십여 년 전
매형이 급성 간경화증으로 돌아갔고
이어 그 이듬해 누이도 시름시름 앓다가
저승으로 돌아간 이후
지나는 혼자가 됐고
어렵사리 고모(외할머니)와 사는 처지가 됐던 거였다
사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듣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통화를 마쳤지만
"굳굳하게 잘 살고 있어요" 라는 말이 생략된 채
"안녕히 계세요" 말이 내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누이는 워낙에 순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매형의 우직스러움이 짬뽕처럼 섞인 그 자식이었으니
오죽하겠냐는 안도가 잔잔한 봄 바람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듯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지된 인상으로 해빙의 계절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면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눈 속에 묻힌 채 담담히
노란 개나리처럼 서 있는
아, 누이여
여기, 아직 겨울의 환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