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외톨박이

겨울 같은 4월에, 누이여!

濟 雲 堂 2010. 4. 17. 13:28

 

 

전화 번호가 바뀌지는 않았을까?

궁금증을 떨치고 전화를 걸어보니

여지없이 벨 소리는 울렸고 동시에

문자 메시지 표시는 깜빡거렸다

 

여지없이라는 말에 고개가 주억거릴 때는

오랜 기간 안부조차 묻지 않은 무심함과

비교적 가까운 촌수인 오촌 지간에 이럴 수 있냐는

자책성 회한이, 바람 찬 문지방에

대롱대롱 위태하게 매달린 거미처럼

흔들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나야! 잘 지냈어?"

"아! 네, 삼촌. 별일 없으시죠?"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이제 졸업반이겠구나?"

"네, 다들 예뻐해주셔서...... "

 

다소 상반된 대답처럼 들렸을

"네, 다들 예뻐해주셔서....."가

"이제 졸업반이겠구나"는 질문을

허공에 붕 떠 버리게 만들었지만

목소리를 듣게 된 것만으로도 어떠냐는

일종의 안도를 느끼게 만든 대답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비교적 친척이 드문 벽진 이 씨의 가계도 그렇지만

인척지간이래 봤자 고모 일가가 그래도 근접 친척인지라

무던히 가깝게 지냈던 사촌 정 씨들이었고

그 중에 네 째 누이인 순남의 늦둥이 딸인 지나는

홀로 살아온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십여 년 전

매형이 급성 간경화증으로 돌아갔고

이어 그 이듬해 누이도 시름시름 앓다가

저승으로 돌아간 이후

지나는 혼자가 됐고

어렵사리 고모(외할머니)와 사는 처지가 됐던 거였다

 

사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사회복지학을 듣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으며 통화를 마쳤지만

"굳굳하게 잘 살고 있어요" 라는 말이 생략된 채

"안녕히 계세요" 말이 내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누이는 워낙에 순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매형의 우직스러움이 짬뽕처럼 섞인 그 자식이었으니

오죽하겠냐는 안도가 잔잔한 봄 바람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듯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지된 인상으로 해빙의 계절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면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눈 속에 묻힌 채 담담히

노란 개나리처럼 서 있는

 

아, 누이여

여기, 아직 겨울의 환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