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告白)
겨우살이를 겨우 통과한 동공은
위축된 조리개를 좀처럼 풀어내지 못했다
그런 고로 뻑뻑해진 눈주름과 눈시울 그리고 눈꼬리를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물은 지극히 제한된 것들 뿐이었다.
모든 게 작게 보여졌다
졸보기처럼 수축된 눈을 통과하는
거대한 세계는
한 없이 쪼그라든 번데기의 모습이었다
사내라면 알 것이다
그 것도 혹한의 겨울을 객지에서 난 경험있는 사내라면,
오줌 누는 기능 이외에 철저히 차단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비약적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을
늘 무기처럼 인식돼 왔던 것에 대한 자멸감
그러나 뼈저리게 느끼는 찰라에도 찾아드는 알 수 없는 평화,
그저 따뜻한 방에 눕고 싶고
배불리 먹고 싶고
작아져도 좋으니 그냥 존재하고 싶다는 방어감만
존재의 전부가 되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봄 볕을 쬐고 보니
동절기 빗장이 슬그머니 열려 있음이 목도된다
무감했던 사물이 수정체를 자극하면서
불어난 몸집을 어거지로 각인시키는 가운데
뿌옇던 유리창에 코를 박아대기도 하고
입술을 짓눌러 근육풀기에 번잡을 떨고 있었다
봄 빛은 강렬했다
소나무 장작때기에 올라
법구를 사르는 장면이 티브이에 스치는 동안
시나브로 승복을 갖춰 입은 채 흘리던 눈물들은
잿빛으로 마르고 있었다
눈물 방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갖은 죄의식과 그 불쏘시개에 행여 데이지는 않을까
좌불안석이었던 불자들
그러나 그 틈에서도 도적질하다가 잡히는
미물 같은 작태가 버젓이 벌어졌다
아, 투명하여라
겨울 그 길고도 지루함이여
속됨이 곧 자연이고
자연스럽게 불타올라 회색으로 남는
불가지적 종언들이여
심란함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을 모색하고자
잠시 길을 나선다
텅 비어 있는 집들
불 꺼진 술집들
나붙은 임대 고백 쪽지들
현격히 늘어난 불황의 복수형들이
가볍게 나선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밤
느닷없이 비가 내렸다
논리적이지 못한 기상 예측을 피해
낯설은 처마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웃어버렸다
명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