舌 .썰. 說

고백(告白)

濟 雲 堂 2010. 3. 14. 22:07

 

 

겨우살이를 겨우 통과한 동공은

위축된 조리개를 좀처럼 풀어내지 못했다

그런 고로 뻑뻑해진 눈주름과 눈시울 그리고 눈꼬리를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물은 지극히 제한된 것들 뿐이었다.

 

모든 게 작게 보여졌다

졸보기처럼 수축된 눈을 통과하는

거대한 세계는

한 없이 쪼그라든 번데기의 모습이었다

 

사내라면 알 것이다

그 것도 혹한의 겨울을 객지에서 난 경험있는 사내라면,

오줌 누는 기능 이외에 철저히 차단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비약적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을

 

늘 무기처럼 인식돼 왔던 것에 대한 자멸감

그러나 뼈저리게 느끼는 찰라에도 찾아드는 알 수 없는 평화,

그저 따뜻한 방에 눕고 싶고

배불리 먹고 싶고

작아져도 좋으니 그냥 존재하고 싶다는 방어감만

존재의 전부가 되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봄 볕을 쬐고 보니

동절기 빗장이 슬그머니 열려 있음이 목도된다

무감했던 사물이 수정체를 자극하면서

불어난 몸집을 어거지로 각인시키는 가운데

뿌옇던 유리창에 코를 박아대기도 하고

입술을 짓눌러 근육풀기에 번잡을 떨고 있었다

 

봄 빛은 강렬했다

 

소나무 장작때기에 올라

법구를 사르는 장면이 티브이에 스치는 동안

시나브로 승복을 갖춰 입은 채 흘리던 눈물들은

잿빛으로 마르고 있었다

눈물 방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갖은 죄의식과 그 불쏘시개에 행여 데이지는 않을까

좌불안석이었던 불자들

그러나 그 틈에서도 도적질하다가 잡히는

미물 같은 작태가 버젓이 벌어졌다

 

아, 투명하여라

겨울 그 길고도 지루함이여

속됨이 곧 자연이고

자연스럽게 불타올라 회색으로 남는

불가지적 종언들이여

 

심란함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을 모색하고자

잠시 길을 나선다

텅 비어 있는 집들

불 꺼진 술집들

나붙은 임대 고백 쪽지들

현격히 늘어난 불황의 복수형들이

가볍게 나선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밤

 

느닷없이 비가 내렸다

논리적이지 못한 기상 예측을 피해

낯설은 처마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웃어버렸다

명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