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談

남일당, 두리반 그리고 유채림, 혹은 降雪

濟 雲 堂 2009. 12. 27. 23:52

눈이 내린다고

모두

가려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크리스마스

신년하례

봇물처럼 쏟아지는

거리

 

눈이 내린다고

눈 꽃 세상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느닷없이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찬송가가 끝나기 무섭게

떡을 나눠먹는 사람들

아이들이 손수 튀겨 만든 팝콘이라며

거리 거리를 돌아다니며

한 봉지 씩 나눠주는

성이 속을 넘나드는

그 사이에

 

복아,

에이 씨발 좃 같아서 못 살겠다

철거반 놈들,

집달리(執達吏) 놈들이 우리 마누라 식당을...

세상이 왜 이러냐?

크리스마스 이브에 게다가

마누라 혼자 있는 데, 가게 집기를...

 

틈 날 때마다

용산 남일당 앞,

출판사 일을 마치고

네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돌보던

소설가 유채림 형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며

전화를 끊었다

 

잇지 못한 말의 여운 속에는,

복아 도와다구!

걔네들이 제일로 무서워 하는 게

작가들의 말 한 마디야

대자보도 써서 붙여주고

위로와 정의로움이 살아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일이야!

딴 분들 게도 연락 좀 해줘

조직력이 있다는 걸

함부로 민초들을 후려쳐서는 안 된다는 걸

내 대신 연락 좀 해 줘!

가,

저물녘 긴 그림자처럼

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쑥대 설렁이는 해방산 저 기슭.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그대 어디 있든지.

서쪽은 어둡다. 그리고,

핵보라.를 거침없이 써 대던

소설가의 힘은 온 데 간 데 없고

사랑하는 세상의

그 사람들로부터

교회 문 밖으로 쫓겨난

거렁뱅이 예수처럼

강설에 묻히고 마는

홍대 앞 두리반 식당 앞에서

 

눈이 내린다고

모두

가려지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