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영역 표시

濟 雲 堂 2009. 10. 15. 14:35

 

부시럭

부시럭

오래된 나무 계단으로

무엇인가가

기척을 내고 있었다

 

생쥐,

고양이...

놀래킬 참으로

여닫이 문을 화들짝 젖히는 순간

뭔가가

내 발 사이를 헤집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생쥐는 아니었다

팔뚝만 했고

고양이 보다는 날렵해 보였고

좀 더 길쪽한 꼬리를 지닌

누른 빛의 형체가

번개처럼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책장 밑으로 숨어들었다는 걸 알아 차린 것은

사스락

사스락

붓 깃 주둥이를 동여 맬 때와 같은

터럭 엮는 소리가

책장 아래서 났기 때문이었다

 

한 참 동안

쫓아낼 궁리 끝에 내린 것은

그냥 내버려 두는 일이

집 밖이라는 불특정 자연계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난 후였다

 

밤에 해야할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건 물론이고

께름칙스러운

미동이 여진처럼 스르렁대는 통에

쪽 문만 빼꼼 열어 둔 채

방을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염치를 운운하는 속담이 그렁그렁 머리 속을 채우던

아침 녘에

방문을 여니

낯짝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들어 맞았지만...

 

굉장했다

치명에 이를 정도였다

엿이나 먹으란 듯

가운데 장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갖은 욕설에

저주가 담긴 듯한

냄새가 진동하는 게 아닌가

 

고양이 오줌도 이렇게 강력하지는 않았고

다람쥐나 청설모 또한

이렇게 가슴 무너져 내리도록

지독하지는 않았었는데 말이지

내가 너무 놀래킬 정도록 윽박질러서 그랬던가

쫓기만 하려고 했을 뿐

억하심정은 없었다고 알아줬음 싶도록

방문을 열어 두었건만

 

고무 장갑을 끼고

락스를 푼 물에 걸레를 담가 짜내어

온 방 안을 닦고 말리기를 수 차례

냄새가 가신 듯 돌아와 보면

여전히 그,

급기야 모기 향을 한꺼번에 세 개를 피우고

팡이제로 원액이 다 나올 때까지

뿌려대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

 

냄새였다

혹시 내 방을

제  새로운 영역임을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강력한 오줌을 싼 것은 아니었을까

 

가뜩이나 요즘 구도심은

재개발이다

도시재생 사업이다 

도시미관 사업이다 해서

말뚝에 붉은 페인트에

노란 진입금지 테이프를

마구 붙여대는 통인데 말이지

 

혹시 

인간계에 대한

자연계의 퇴출작전

이제 그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