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작은 책 길'에서 시 낭송을 들으며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문화사적 시각에서 살핀 논조 가운데, 손뼉을 치며 탄성을 자아낼 기발한 해석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몇 가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 시민들을 흥분하게 만든 원인이 푸른곰팡이가 핀 빵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공개적인 만담의 교류와 자기표현의 독특한 방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공간으로서 ‘살롱’ 또는 ‘카페’의 역할론이 그 것이었다.
오래된 떡이나 빵 등의 유기물에 주로 생겨나 복통과 고열을 유발케 하는 푸른곰팡이 페니실리움은 유익한 세균으로 분류되어 한 때, 만병통치약이라 일컬어졌던 페니실린의 원료로 사용된 이력을 갖는 균사체이다.
시민 사회의 경제와 정치적 만담, 나아가 예술적 표현까지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던 카페의 장소성은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 노릇을 톡톡히 해낼 수 있었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했으며, 시네마토그라피라는 사상 초유의 영화를 카페에서 상영했음도 에둘러 프랑스 혁명의 운명적 배경으로 꼽고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카페 ‘그랑’에서의 영화 상영과 프랑스 혁명과의 시차는 한 세기를 넘나들지만, 특정한 공간에서 말의 씨앗이 뿌려지고 표현이 무르익어 예술이 탄생된다는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먼 역사를 살펴보면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 구실에 못 미치지만, 이와 흡사한 회합 구조가 반상사회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 명나라 문인들과 합석해 시문을 읊고 나누는 조류가 장안에 유행했다는 것과 이를 조정에서 장려했다는 내용이 그렇다. 반상사회가 갖는 특수한 성격으로 봤을 때 저변으로 확대되기는 어려웠을 거라 여기지만, 사람들이 모여 시문의 세계를 나눴다는 것에 논점을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이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향가나 고려 가요 등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글귀를 꿴다는 것이 아득바득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연관성에 배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도 역시 따지고 보면 동전의 양면 같은 우리네 삶의 운명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수긍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노동요와 구전돼 전해오는 구비전승의 가치 또한 질박한 삶의 단초를 제시하는 중요한 소통구조였음을 이참에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여하 간에, 사람의 생각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일체의 정제된 기능은 가히 본능적이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최선의 방법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인천시 동구 창영동에 소재해 있는 헌책방 ‘아벨’에서 매 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치르는 ‘배다리 시 낭송회’는, 이른바 인문주의의 재생이라는 말줄임표가 숨어 있다. 재생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일찍이 인천이 개항도시로서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이력도 있거니와 노동문학과 카프문학 그리고 한국전쟁을 전후로 르뽀문학 등이 활기차게 발표되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칠팔 십 년대에는 시대현상을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일단의 인문주의적 현상들이 시 낭송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다방을 중심으로 다중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의 벽면마다 붙였다 떼기 바쁠 정도로 시 낭송회 및 작품 발표회가 잇따랐었다. 어둡고 모난 시대를 밝히고자 하는 작가적 등신불의 시기였던 것이다. 헌책방 ‘아벨’의 또 다른 이름인 「시가 있는 작은 책 길」이 어언 열아홉 번째 시 낭송회를 맞는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들린다. 앞으로도 횟수가 계속 누적돼 지속될 수록에 마음은 더욱 조려올 것 같다. 각박해진 시대현상의 재생기능 구도로 본격 진입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카페 ‘그랑’은 아니지만 커피와 녹차, 오래된 떡을 내오는 모양새가 더더욱 수상쩍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