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의 배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
변화의 주제는 변화 그 자체이다
새로움을 쫓는 이 불멸의 유전자를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삶의 배면에 위치한
인간적 슬픔을 그림자처럼 끌고 다녀야만 한다
집들이 철거 되고 있다
그 것이 종용에 의한 것인지
자발적인 변화와 부의 재 생산구조를 위한
또 다른 모험인지
정확히 알아낼 길은 없다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불균형에 의한
실험적 구조변형이 대부분 철거의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재도구들이 홀랑 뒤집혀진 채
혼돈의 냄새를 풍기는 빈 집에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똥이 마렵기 시작한다
배설의 물리적 욕구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배설의 욕망은
오금이 풀려지면서부터 시작된다
느닷없이 불을 지피고 싶다거나
멀쩡한 문짝과 집기들을
쓰러뜨리고 부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성적 사고에 의해 정연화된 치움의 동작보다는
오히려 파괴에 가깝고 짐승처럼 포효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잘 정돈돼 보이는 물체들의 이면에는
충동적이고 무질서한 본능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리정돈과 질서유지가
결국
자신을 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닳을 무렵에는
복구에 대한 물리적 손망실과
산술적 가치로 본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을
이내 후회를 하게 된다
철거되는 집들
파 헤쳐진 도로들
거리로, 지하도로 내 몰린 사람들
고장난 채 버려진 자전거들
알몸으로 아무렇게나 유기된 여성들
읽기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버려진 책들
고쳐 입거나 깨끗하게 빨아 입어도 무방해 보이는 옷가지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버리고
부수고
찢고
목숨을 끊는
이 엄청난 유기적 불량 담보물들
혹시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거되어 사라진 집 위에
또 다시 집이 얹혀지고 있다
청동기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들이
신석기 고인돌 속으로 다시 무덤을 내어 들어가는
과거회귀 본능처럼
집 위에 또 다시
살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또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집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