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전봇대를 추억함
전봇대를 보면 오르고 싶었다
불알이 까지는 줄도
바짓가랑이가 찢기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오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냥 그 시대에 부르던
까만 타마구 칠이 손에 끈적이고
온 몸이 광부의 그 것 과 닮도록
그렇게 놀았던 유년의 한 때
양잿물로도, 신제품 선전으로 열을 올렸던 빨랫비누 백합으로도
깨끗하게 빨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므로
어머닌 늘 꾸지람과 동반한 몽둥이 세례를 함께 주시기도 하였다
전봇대가 하늘로 오르는 또 하나의 통로라는 것을
막연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청년기 시절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시기는 점철반복돼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둔중하게 쳇증처럼 뭉쳐져 있던 시대를 관통하는 것을
전봇대 쯤으로 여기던 시대였었을 것이다
몸 밖으로 나오는 그 모오든 것을
냉랭따숩게 받아주었던 전봇대
오줌도 좋았고
똥도
어깨를 밀쳐 등을 받쳐대고
입술 마르도록 빨아대던 익명의 그녀도
전봇대와 유관했었다
하여 나의 이데아는 발기부전이란 증세를 겪어보지 못했을 만큼
공격적이었고 음습했고
배설의 행복처를 주변에 늘 포진케 하였던 것이다
내게서 전봇대의 기능이 점차 멀어져 갔던 시기는
새로운 시대의 불꽃들이 우후죽순 펴오르던 때이기도 하였다
일상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부터
더욱 일상 속에 파묻혀버렸고
그 자유와 해방감이 영혼을 오히려 지배해 버리는 구조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에
이미 뇌리에 붙박혀 있었던 전봇대에 관련된 일화들은
어느덧 회복할 수 없는 잿더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2009년
나의 전봇대를 추억함에 있어서
이천 영 영 구년이
자칫 빵꾸날 년으로 들려오는 것은
지난 세월을 무자비하게 그냥 흘려 보낸
자책감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점잖게 배설하고 싶다
철부지처럼
불한당처럼
나의 추억에 매몰돼 죽은 언어가 돼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인천에 전기가 최초로 가설. 개통된 것은 1905년 6월이었다
인천전기주식회사는 당시에 진출해 있었던
일본, 청(중국), 미국, 독일, 영국인 등
외국인 삼십 여명이 공동 출자해 만들어진 회사였다
이미 1886년 인천항으로 전등 설비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즈음에
타운센드 양행이 소위 말해서 끗발 날리던 무렵
이듬해 경복궁에 설치된 전기 시설이 소문으로만 회자되던 것이
인천에 드디어 설치가 된 것이었다
당대의 천재 에디슨에게 공문을 보내 알전구를 주문해
실용화 되기까지의 과정 등이
전설처럼 취급받기도 하였던 시기였다
하지만
청일전쟁의 이면사를 들여다보면
일찍이 청나라는 전보관련 부설권을 이미 조선 정부에 청을 해
그 권리를 수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보는 말 그대로 미국인 모오스 혹은 모르스의 이름을 따 불리던 신호체계로
전기의 힘을 빌어야 사용가능했던 거였다
정보력이 국력을 잣대질 하는 구실로 여기는
오늘날의 세태와 다를 것 없이
그 때도 한반도를 갖고 잇권의 분탕질을 자행하던 때였다
여기까지
이처럼 역사는
가마 타는 즐거움 만을 논했지
가마 매는 자의 수고로움을 늘 뒷짐진 채 무시해버리는
이면사를 그림자처럼 달고 산다는 것을
망각해 왔던 것이다
기찻길을 따라
전봇대는 왜 세워졌고
우체국 또는 역에가서 전보는 왜 쳐야 했는지
전신주로 따로 이름을 바꿔가며
왜 50m 간격은 왜 유지되어야 하는지
전봇대의 밑둥 지름이 왜 27cm를 넘어서면 안 되는지
높이는 16m를 넘어서도 안 되고
7m 이하여서도 안 되는지
세칭 타마구라 불리는 크레오소트나 말레닛 등을
왜 바르게 됐는지
등산장비처럼 워커 같은 군홧발 밑에
쇠꼬챙이처럼 생긴 침을 왜 껴야 했는지 등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보들이 사장되어야 하는지
왜 이 것을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인 것이지
전봇대는 한 때 나의 솟대였다
소도를 갈구했던 무당이었고
또한 무지렁이 소시민이기도 했었다
낭만에 죽을 쑤어 먹고 산다고 한들
차마 잊혀질 수 있게냐 마는
오늘
허리 잘리운 전봇대를 보면서
상념에 젖어본다
지난 시대를 되새김질 할 연륜이 차지 않았어도
오늘
이 시대를 갸륵하게 추억해낼 마지막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행여 빵꾸날 년, 2009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조심스럽게
상냥하게
그녀의 아랫도리에
머리를 쳐박고 기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