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話거나 寓言이거나
2000년 신포동에 대설이 내렸다
삼일 낮밤을 주야장창으로 눈이 내렸다
상인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천막을 비집고 퉁겨져 나온 눈들을 치우느라
아침부터 분주하기만 했다
눈은 흘러 넘쳐났다
좌판 위에, 100미터가 넘는 천막 위에...
쌓이고 쌓인 눈의 무게가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고
이에 상인들은 천막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며
장대에 칼을 매달아 천막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눈의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치 못한 100미터 짜리 천막은
기어코 장바닥으로 쓰러지고 만다
부실 공사니 뭐니 여러 이유를 들먹이며 격론은 오갔고
2년 여의 공사 끝에 쇳파이프에 천막을 두르던
기존의 천막이 백색 아케이트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비닐 천막은 강도 높은 아크릴로 바뀌었고
쇳파이프 기둥은 에이치 빔으로 교체되었다
이 시기에 이마트가 입점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깨끗하고 현대식으로 조성된 재래 시장이 새로움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무렵에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은
동네 어른들에겐 충격적인 소식으로 들려왔고
이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이마트와 중구청으로 달려가는 빠른 행보를 보였다
일선 관청에 사람들이 몰려가, 이른바 데모를 하니
당시 민선 구청장이던 모 씨는 지레 겁을 먹고
잘 타협해 보겠다. 세수를 안 받는 한이 있더라도
상인들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겠노라며 성난 상인들을 달래주었다
앞장섰던 번영회장 서 모 씨가 돌연 일언반구 없이
이마트와의 대결구도에서 손은 놔 버렸다
그 후 아무런 언급없이 가게가 잘 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언구럭이 번영회장이 바뀐다
젊은 층에 속하는 사십대 후반의 정 모 씨가
아케이트 공사를 떠 맡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상인 대표로서 잘 해나갈 무렵
뭔 일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아케이트 공사 설치 후로
공사 업자들의 험상굳은 방문이 연일 이어졌다
공사 대금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쓴 천 몇 백만원을 받아야 한다며
번영회장 정 모 씨를 윽박지르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
2년의 임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박 모 씨라는 건어물 가게 주인이
전임 회장을 잡아 넣겠다면서 상인들을 도모해
정 모 씨를 회장 직에서 몰아내버렸다
잔여 임기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며 경찰서며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구속여부를 타산해 보면서도 먹은 돈 토해낼 것을 다짐 받기는 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깜깜무소식이다
그랬던 사람이...
2005년 재래시장은 이마트에 완전히 나가 떨어진
허약한 복싱선수처럼
체면이고 뭐고 다 떨어내고
일어서기에 겨우 급급연연할 무렵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는 사업비를 받아 재차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다
그랬던 사람은...
번영회장 일이 고되다면서 명예 직분인 회장의 판공비를 50만원으로 올렸고
각종 공사 업체로부터 거마비며 수임료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관청으로부터 볼멘 소리를 들어야 했던 점이나
시공사업주로부터 XXX소리를 직접 전해 듣는 입장은
매우 곤혹스럽고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랬던 사람은...이제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게 되었다
결국 지난 5월 20일 께로 사임을 하나
누구에게 사임의사를 내 놓았는지
주체가 불분명한 채 다음 바통을 최 모 씨에게 넘겨준다
최 모 씨 또한 단독 입후보에 무투표 당선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번영회를 맡게 되어 고맙다는
장내 방송을 거창하게 해대었다
이랬던 사람 역시 수 년 전 강력한 지지를 요구하며
남 모르게 투표 용지 50매를 투표함에 투기하려다
들통나 창피를 당했던 장본인이었으매...
거 참 이상도 하지?
왜, 매번 번영회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불성스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여하튼 이 번에 회장이 된 최 모 씨에겐
그 동안 기금으로 몽아 놓은 돈 일원 한 푼 줄 수 없다며
박 씨 성을 가진 회장은
식권 일 만원 짜리와 쌀 4 kg짜리 한 포 씩을
전 상인들에게 나눠주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위 사진의 쌀이 그 정체이다
얼마 전, 동네 원로격인 노인들이 나를 찾았다
"자네가 한 번 해보지~! 회장..."
그러면 당신들이 힘껏 밀어줄 테니...
"자네가 바쁜 건 알지만, 상징적으로라도 있으면 안 되겠나?"
선친의 후배들이었다
그냥 물리듯 손사래를 받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유를 설명해야 했으되 정중해야 했고 적확한 얘기를 꺼내야 할 상황이었다
"매번 회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 번도 ..."
마찬가지라는 얘기와 그 회장 자리는 저주가 있는 모양입니다
평상 시에는 멀쩡히 성실하게 장사를 하던 사람도
그 자리에 앉았다 하면 비리가 연루되는 모양입니다
저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구요...
게다가, 상징적인 자리를 원하신다면
판단컨데 꼭두각시로 있으란 얘긴 즉
지금 이 판국으로 보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 뿐더러...
이야기를 이렇게 맺고 보니
등 돌리고 돌아서는 두 노인네의 어깨가 사뭇 무겁게 보인다
쌀 포대가 언제 썩어 문드러질지, 언제까지 그 수명이 다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