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놓인 어느 근대시대의 강당
기로岐路
무작정 떠난 길에서
어느 한 쪽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마음 속 안개일 때가 있다
적어도 편법이 난무한다고 의심하고 있는 세상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는 우리네 생활 속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결정일 것이다
다시, 나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어느 명문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칠십 여 년의 나이테를 두르고 있는
낡은 강당을 찾는다
워낙에 민감한 사항이라
직접적인 참여와 평가는 차후로 미루겠지만
현재, 이 강당을 둘러싸고
동문들 사이에 양분된 의견들이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고 있었다
낡고 헐은 이 곳에 기숙형 학교 설립을 제안한 일부 동문들과
근대시대의 유물일 망정 근대문화재로서 보존 가치가 충분하고
당대에 얽힌 추억들을 허물순 없다. 주장하는
늙다리 동문들 간의 치열한 설전이 오갔다
역시, 어느 쪽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분위기다
다만 다른 일면에 깃든 약설을 잠시 펴 보면
일제 강점이 시작되는 1910년부터 1930년 후반까지
일본은 우리나라를 완전한 속국으로 취하게 됨에따라
건축물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대규모 공사를 강행하게 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강점 이전에 비해 엄청난 규모로
공사가 시행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과 세계 제 2차 대전 이전 무렵부터는
전쟁물자 조달 및 병참화 기지 선언에 따라서
이 시기에 지어지는 건축물과 공사물들의 규모가
대폭 축소 된다는 사실이다
뭐, 쉽게 설명하자면 강점기 중반에 지어지는 대표적 건물 가운데
서울역 등이 그렇고
전쟁준비 기간 즉, 병참기지화 외적 부분이랄 수 있는 학교 시설인
이 학교의 강당 등을 비교하면 그 차이점은 금새 판명이 난다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분수령으로 여겨도 도리 시기에
만들어진 이 강당의 의미는 이렇게 받아 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은 이 번 MB정부처럼 몰상식하고 무지몽매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진득한 협의와 끊임없는 소통의 의지, 즉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덕목 만큼은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생각의 사슬은 끊어짐 없이 이어진다
개발이냐 보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