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 1세대들
병원의 이름들이 제각각인 요즘과 비교했을 때
참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이름이 단순한 병원들이
전에는 많았다
김춘익 원장 님이 운영하시던 김외과 만해도 그렇다
지금에야 수련의 기간을 마치고 전공의가 되면
각기의 개성들이 흠씬 느껴지는 미구美句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병원의 이름을 짓는 게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가 되었다
일제시대에 의예과를 나온 아버지 세대들이 대게 그렇게들 이름을 지었다
신외과, 이이비인후과, 윤치과, 오치과 식으로 말이다
김범수 원장 님이 운영하시던 김내과도 마찮가지이다
이후 그 아들 세대에 와서는
졸업학교의 이름을 따 서울치과, 연세병원, 고려, 순천향... 등의 입간판이
주종을 이루다가
최근들어서는 전공관련 병원임을 추측해 낼 수 있는
기발한 이름들이 속속들이로 생겨나는 게 요즘 추세이다
비추미 성형, 조치항 외과, 아름다운 안과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의 폭은 넓어진 것 같다
여하간에 병원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요즘 들어 내 주변에서 벌어진 귀천歸天 소식들에 대한 소회와
병원에 대한 단상들이 엇갈리게 교차되었기 때문이다
신포동은 일제강점기의 굴레를 벗어나자마자
조선사람들 즉,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이 급거 입주하는
상황이 전개된 곳이다
수없이 많은 적산가옥들이 미군정의 지휘? 아래
짧은 영어 몇 마디로 불하되고, 반공反共이란 이름만 내걸었다 하면
공장이든 집이든 적산가옥들이 손에 거머쥐게 되는
진풍경들이 연출되기도 했던 시기였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신포동에 붙박아 생계를 영위하던
시절이 바로 이 시기이다
세월의 환난과 민족적 서러움, 그리고 가난과의 힘겨운 갈등(싸움)을 딛고
겨우 정착하던 때였다
그 세대들이 하나 둘, 명이 다해 우리들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김원화 할머니가 89세로 생을 마감하셨고
박** 씨 아저씨 90세, 신** 씨 아저씨 76세 등이 시간을 저울질 하고 계신다
박 씨 아저씨와 김 씨 할머니 등 우리 부모님
동갑내기들은 이제 신포동에서 더는 뵐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한 시간을 한 동네에서 지낸 분들에 대한 기록이 좀 아쉽다
오래 기억 한다기 보다는
구체적이며 체험적인 개개인의 사실들에 대해
기록하는 일들이 곧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겨우 깨닳을 즈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