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위하여-이일훈-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거의 한 곳으로 집중돼 있다
그 한 곳은 불특정적이지만, 특정 지을 수 밖에 없고
삶의 전반에 걸쳐 발생되는 모든 불안 요소들이며
그 대안을 찾아내 소망하는 것에 가까이 다가서려 하는 의지
그 게 희망이고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가능성과 실천 그리고 좌절 등의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만이
소망이란 것이 비로소 눈에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불편을 위하여> 저자 이일훈 (출판사:키와채) 선생의 한담을 듣는다
인천건축재단 창립을 기념해서 마련된 자리였는데
장소의 소박함과 소수의 사람들로 모여 있었음에도 그 열기는 자못 뜨거웠다
정말이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게 되면 백발 성성한 어느 한 분의 뒷모습이 무리 가운데
해오라기처럼 돋보이는데 '이 분!' 이라고 실명을 거론하면
바쁘기로는 시장보다도 더 바쁘시고, 어지간해서 약속 한 번 잡을라치면
대여섯 번의 시간 조율을 해야만이 약속을 맺을 수 있을 정도로
일이 많은 분인데, 이런 분이 한담의 주제로 내놓은 <불편을 위하여> 강설이
끝날 때까지 두 시간 여,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황해문화> 발행인 겸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지용택.
낱낱이 열거할 수 없지만 이일훈 선생의 강설은 건축가로, 교수로, 실무자로서
건축에 대한 경험과 성과물(우리안의 미래 연수원=가평 설악면)을 통해
미래가 요구하는 현재적 삶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실행해 옮겼다는 것에
그 무게가 지대하다
'재생 에너지 건축'에 있어서 연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고
집을 짓고 사는 데에 있어 편리주의가 갖는 비인간적 구조를 풀어나가는
슬기로운 방법 등을 성과물 제시와 더불어 진솔하게 강설하는 모습에서
참가자 모두는 희망의 언덕을 비로소 오르게 되었다.
이일훈 선생의 강설은 건축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조를 이룬다
자신이 설계한 연수원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철학에 이르기까지 등을
마치 이웃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알기 쉽고 편한 경험담 같은 얘기였다
편안한 삶의 구조는 선험적인 불편함이 전제돼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이 구조는 변증법적인 나선형 구조로 늘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이카루스의 모순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편안함과 불편함을 내 방식대로 위치 이동해 해석하면
무한궤도를 발바닥에 달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만 하는
선로의 양면과 같은 것이란 생각이다
한 쪽은 불편, 다른 한 쪽은 편안함이란 기찻길 또는 평행선
목적지에 대해선 영험적 단계이므로 좀 더 깊이 있는 종교적 성찰이 요구되지만
가시적인 일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은 거개가 이러한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도 많은 실리를 선택했다
물리적인 안정은 피와 땀을 요구했고
정신 세계는 물질적 세계를 이타인처럼 여겨 하학의 구조라 폄하했지만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런가?
같은 몸 안에 다른 기능들이 잘 조합된 총체적 유통망.
이일훈 선생은 건축을 논했지만
이미 많은 고통의 성장 과정을 거친 구도자처럼 드러낸 내면을 통해서
참가자들에게 다각적인 삶의 접근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언죽번죽 서슴지 않고 강설하는 건축 일반 가운데
제일 먼저 기세 등등하게 다가오는 내용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난방 방법이었다
매력적인 것을 뛰어 넘어 황홀할 지경이었다
다이옥신 발생의 대명사라고 일�는 플라스틱류 쓰레기를 고온으로 녹이면
다이옥신이 소멸하게 되는데 이를 다시 재생에너지로 써만들어 난방 원료로
사용하면 거의 다이옥신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그 것이다
지붕을 잔디로 깔았다는 얘기는 이미 독일에서 즐겨 사용하는 공법이었고
나무 특히 통으로 된 나무를 집 구조에 사용함으로써
나무 고유의 응집력을 살린 부분들은
재치가 넘치는 전문가의 식견이 아닐 수 없다.
이일훈 선생의 건축 강설은 우리나라 전통으로 내려오는 집의 구조를 현대에 맞춰 이일훈 방식의 일깨움으로 재생시켰다는 점에서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뭐니뭐니 해도 들은 얘기 가운데 가장 섬뜩하게 심장을 긴장시킨 것은
오목(우묵)자리와 볼록자리에 대한 거였다
집을 짓기 위해 파낸 최초의 탯토를 우묵하니 둥글게 만들어 몇 년 동안
그냥 냅둔다. 그러다 보면 풀 씨가 날아들고 새들이 똥을 싸고
몇 년 그렇게 자유공간으로 놔 두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리잡아
생태의 자생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는 볼록자리.
최대한 자연 상태로 방목해 누구든 드러눕고 편히 쉴 수 있도록 꾸며 놓은
우묵자리 등은 자연과 사람이 불이(不異)함을 조경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한 건축가의 철학아 담겨 있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현대판 실사를 보는 듯해 그 감동의 여진이
이리도 흥분을 가라 않히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은 시간이었지만 이일훈을 다 본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현재에 머물러 있는 내가 아니듯이
앞으로도 많은 조짐을 일으켜 후학들의 반석으로 견고히 자리매김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보면 과연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