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인상화(印象畵)-정지용-
수박 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의 저녁 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선
전등. 전등.
헤엄쳐 나온 듯이 깜박거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오는
축항의 기적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로 퍼덕이는
세관의 깃발. 깃발.
시멘트 깐 인도 측으로사폿사폿 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失心)한 풍경이려니...
부질없이 오렌지 껍질 씹는 시름...
아아, 애시리(愛施利) . 황(黃)!
그대는 상해로 가는구료.
- 학조(學潮) 1호, 1926. 6-
*읽기 쉽게 다듬었습니다. 예:부즐없이 오랑쥬 껍질 씹는 시름=부질없이 오렌지 껍질 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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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1902~1950.납북)이 20대 젊은 시절에 인천을 방문하며 쓴 시
'슬픈 인상화' 전문이다. 실제로 그가 인천을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의 부재로 가늠하기 어렵지만, 시의 전반을 이루고 있는 리얼리즘의 시각을 기준점으로 설정해 놓고 봤을 때
맞다! 쪽으로 기울어짐이 타당하다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선 전등. 전등.'이나
'침울하게 들려오는 축항의 기적소리...'등은
인천이란 장소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주는 체험적 표현에 틀림없다
그러나 '수박냄새 품어오는 첫여름의 저녁 때',
'시멘트 깐 인도 측으로 사폿사폿 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아아, 애시리 황! 그대는 상해로 가는구료' 라는 문장의 구성을 놓고
살폈을 때. 이는 거의 일시적이거나 단발적이었을 인천이란 도시의
체험상황을 암시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인천은 1920년 당시에 수도권 일대의 유학생들을 해외로 실어나르는 기항지였다
이미 1918년에 도크라 불리는 축항이 건설돼 언제든 접안이 가능했고
여타의 해안 도시보다도 서구 문물이 홍수처럼 넘쳐나던 곳이었다
지용은 유학 길에 앞서 인천을 이렇게 노래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을 지 모른다
흘러가는 실심한 풍경'과 '애시리 황'에 대한 상해 이미지 연결은
식민지배하 유학생들의 단적인 감상을 단숨에 정리해버리는 축약어들이 되었다
어쨌든 지용이 발표한 이 시는 1926년에 창간된 학조라는 잡지다
교토(京都)소재 길전제국대학 기숙사내에 경도학우회를 결성하고 이 회에서 발행했는데 당시 이 잡지에 대해 불온서적(치안방해)이란 꼬리표가 일제에 의해 붙어 다녔던 조선인 학생들의 잡지였음을 다음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국편위자료실
오래 전부터 개인적 숙원이었던 인천 관련 문학작품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찾아낸 자료의 일부이다.
인천을 노래한 문학작품들은 솔찮게시리 널리 분포돼 있었다
'황금이 길거리에 널려' 있다고 서구에 전해졌던 당시부터
민주, 민중, 노동 현장의 성징이 각별했던 시기인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 전반을 아우르는 노래들을 모둠으로써
문화적 축을 일궈내야 한다는 숙제거리인 셈이다
여하튼 지용은 이화여대 교수자리를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그 흔적을
북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질곡을 남기고 말았다
뜬 소문이 여럿 나돌고 있지만... 작품 속의 인천,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봐야할 입장에서는 여타부분을 굴절시킬 수 밖에 없음을
사족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