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돌

중화기독교회

濟 雲 堂 2008. 3. 7. 16:59

 

 지금은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중화교회를

우연히 사진 창고에서 발견해 다시 올리며...^ ^

 

 인천 차이나 타운 뒷골목 능선바지에 외롭게 보이기도 하고

때론 휑댕그렁한 적막을 뒤집어 쓴 부처 같이 보이기도 하는

돌덩이를 발견한다.

 

1922년에 새로 쌓아 올린 교회 건물의 기념비 임을 알려주는

돌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잡스러운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1914년 인천에 청국 조계지가 완전히 철폐되어

오갈 데 없이 주눅 들어 있었어야 했던

화교들의 촛불 같은 심장이 원래는 의선당이란 사원이었다

이 의선당 사원은 부처를 비롯해 여러 신을 모신 곳으로

도교적 기풍이 훨씬 더 묻어나 보이는 절이기도 했다

 

초기 인천의 개항과 더불어 상거래 및 무역을 주도적으로 행하였던

중국인들이 이 곳을 거점으로 삼은 지 어언 삼 십여 년 세월을 훌쩍 넘긴 시기였을 당시에

스스로 격동기의 변화를 헤쳐나간 합리적인 삶의 행태들은

교회라는 형식을 받아들임으로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어릴 때 이 지역을 지나간다는 일은 매우 곤혹스러웠고

때로는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검게 물들인 인민복 차림에 전족을 하고 기우뚱대며 거니는

여성 화교민이나, 즐비하게 늘어서 앉아

햇볕을 쬐며 냄새도 야릇한 연기를 뿜어 올리는

노인들 앞을 지나는 일이란 게 여간 거북살스러운 게 아니었다

 

지금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게 아편이었고

다들 아편에 취해 촛점 잃은 휑한 눈이었던 것이

어린 눈에 두려운 현실로 보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교회가 정식으로 다가간 것은

이 교회가 설립된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경성 중화 교회의 도움으로 이 해 6월에

중국인 목사가 부임함으로서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1933년에 차도심(車도심)이란 목사가 부임했다는 기록 외에

그 이전의 담임 목사들의 이름을 찾아내는 게 수월찮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현재 이 교회를, 이 교회가 유구한 이력을 갖고 있다는 흔적은

차갑게 식어버린 돌맹이 말고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팔 년 전에 우연히 찍어 둔 교회의 전경이 그나마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온통 먹자 골목으로 변한 중화교회 앞 길은

낑깽 거리는 중국 전통 음절에 짜장면 볶아대는 냄새가 진동하고

이들의 문화와 삶의 애사는 발견할 길이 없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민사이다

400여 년이 넘는 해외 이주 화교들의 바지런함과 끈질긴 삶의 욕망

그 일부라도 오롯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미 차이나타운 안에서도 천연기념물 같이 귀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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