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지붕, 영혼의 아이들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댁에 갔던 기억이 오랜만에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항아리를 굽고 기와를 말리고 사셨던 할아버지 댁
그 오래된 기억이 아삼아삼 떠오른다.
가마에 불 지피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마 옆구리에 난 구멍을 따라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고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있는
가마 속을 난생 처음으로 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던
너댓살 시절
미끄덩거리는 바닥을 채 느끼지 못해 발을 헛디뎌버린 나는
벼랑 같은 가마 속 맨 바지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타마구(아스콘 재료. 일본)를 온몸에 뭍힌 채
울고불고 난리 쳐댔을 어린 나...
깔끔하게 명절 빔을 차려 입고 칠 대 삼 가르마를 했을 게 분명한 그 때
아마 그 이후로는 가마에 대한 기억이나
할아버지의 얼굴 등이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 것은 구덩이에 대한 두려움과
더럽히고 싶지 않았는데 꼬까옷이 더럽혀졌다는 것 게다가
도시에서 자랐다는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던 순간으로
시골에서 만난 친척 또래 아이들에게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축된다
이런 생각의 뿌리에는 다 타고 남은 재라는지
부서진 기와 그리고 마땅히 추억해 낼 게 없는 어린 시절을
도시에서 보낸 이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먼지 날리는 신작로에 타마구가 깔리고
검게 칠해진 나무 전봇대에도 타마구
미니 스커트 입고 다니는 누나들 속꼬쟁이 보겠다고
육교 아래서 가방 맨 채 하루 종일 진치고 키득거리며 서 있던
그 곳에도 타마구...
물론, 나무 판자때기를 대거나 아예 육교 아래서는
위를 볼 수 없게 설계를 해 놨는지 이후로는 볼 수 없게 됐지만
온통 검고 찐득거리고 불량한 기억들이
어린 시절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불타고 있는 아니, 시커멓게 재만 남아 있는 숭례문을 황망히 바라보면서
전혀 연결 될 것 같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이 오지랖스런 상상의 갈퀴는
본능적으로 눈 길 가는 곳 심장이 가리키는 곳
아무데나 우비적거리기 좋아하는 탐색의 습성 때문이다
결론적인 얘기겠지만
불타는 모습이 중계되는 동안 마치 홀로코스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미래의 우리 자손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수히 많은 현재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수한 현재를 �은 더듬이로 더듬어 다가설 수 있는 곳까지
풀어진 가슴의 오지랖을 다시 저며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