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목(都市遊牧)

늙은 지붕, 영혼의 아이들

濟 雲 堂 2008. 2. 14. 22:17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댁에 갔던 기억이 오랜만에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항아리를 굽고 기와를 말리고 사셨던 할아버지 댁

그 오래된 기억이 아삼아삼 떠오른다.

 

가마에 불 지피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마 옆구리에 난 구멍을 따라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고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있는

가마 속을 난생 처음으로 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던

너댓살 시절

미끄덩거리는 바닥을 채 느끼지 못해 발을 헛디뎌버린 나는

벼랑 같은 가마 속 맨 바지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타마구(아스콘 재료. 일본)를 온몸에 뭍힌 채

울고불고 난리 쳐댔을 어린 나...

 

깔끔하게 명절 빔을 차려 입고 칠 대 삼 가르마를 했을 게 분명한 그 때

아마 그 이후로는 가마에 대한 기억이나 

할아버지의 얼굴 등이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 것은 구덩이에 대한 두려움과 

더럽히고 싶지 않았는데 꼬까옷이 더럽혀졌다는 것 게다가

도시에서 자랐다는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던 순간으로

시골에서 만난 친척 또래 아이들에게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축된다

 

이런 생각의 뿌리에는 다 타고 남은 재라는지

부서진 기와 그리고 마땅히 추억해 낼 게 없는 어린 시절을

도시에서 보낸 이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먼지 날리는 신작로에 타마구가 깔리고

검게 칠해진 나무 전봇대에도 타마구

미니 스커트 입고 다니는 누나들 속꼬쟁이 보겠다고

육교 아래서 가방 맨 채 하루 종일 진치고 키득거리며 서 있던

그 곳에도 타마구...

물론, 나무 판자때기를 대거나 아예 육교 아래서는

위를 볼 수 없게 설계를 해 놨는지 이후로는 볼 수 없게 됐지만

온통 검고 찐득거리고 불량한 기억들이

어린 시절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불타고 있는 아니, 시커멓게 재만 남아 있는 숭례문을 황망히 바라보면서

전혀 연결 될 것 같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이 오지랖스런 상상의 갈퀴는

본능적으로 눈 길 가는 곳 심장이 가리키는 곳

아무데나 우비적거리기 좋아하는 탐색의 습성 때문이다

 

결론적인 얘기겠지만

불타는 모습이 중계되는 동안 마치 홀로코스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미래의 우리 자손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수히 많은 현재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수한 현재를 �은 더듬이로 더듬어 다가설 수 있는 곳까지

풀어진 가슴의 오지랖을 다시 저며야겠다는 생각이다.

 

 

 

35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