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집

제임스 존스톤 별장 2

濟 雲 堂 2007. 12. 3. 16:52

 

우리나라 전체가 개발이란 화두를 놓고 머리 질끈 동여맨 채

씨름을 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언어적 의미만을 두고 봤을 때는

누구나 공감하는 단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사람도 아프면 치료를 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예방의학이다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그에 비례해서

손익 분계선에 따른 여러가지 현상들이 드러나게 되고

불편함과 편안함을 경계로 대체적으로 편안함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보편적인 양상이다

 

근데 문제는 이 편안함의 추구가 늘 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개발은 필시 인체의 경험으로 보아 예방의학 쪽에 가까운 행위로 봄직이

마땅하나 개발 자체가 목적이 되었을 때에는

여러가지 혼란을 유발 시켜 개발 이익(편안함)에서 도태되는 집단을

양산한다는 단점이 있다.

 

어느 편을 옹호하거나  부정하는 차원을 떠나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리를 생각해 볼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쪽으로 기울기 각도가 확장되곤 한다

 

그런 게 마음이 아프다 

 

인천의 뜨거운 감자로 새롭게 떠오르는

만국공원, 일명 자유공원. 아니, 각국공원은

1888년 개장한 이래 오늘 날까지

119년 간을 인천이란 도시 생성과 그 궤를 같이 해 왔던

증거이자 시민들의 신체의 일부가 된 근린공원이다

 

근린이란 의미가 말해 주듯

이웃에 가까이, 이웃과 함께 자라나는 유한 공간의 지칭으로서

애정이 담긴 장소성을 지녔다 하겠다

사람은 생로병사의 단기적 일시성을 감내해야 하는 반면

무생물로 취급되는 공원은

반영구적 통시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갖는

혼합공간 즉 카오스의 구조를 지닌 곳이다

 

그래서 공원은 어느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을 뿐더러

어느 누구에 소유되지 않는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겠다

남녀노소의 구별에 따른다거나

놀이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거나 하는 따위가 많다면

공원은 사원(死園)이거나 사원(寺園)이 되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일백 이 년 전

자유공원에 존스톤 별장이 세워졌었다

세워졌었다라는 과거완료형에 사라졌음을 암시하는 '었'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보면 단순과거보다는 아쉬움이 토구되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게 되는 데

이런 묘한 분위기를 우선 정리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좀 더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포 전에 이미 글을 올렸지만

미진했던 점을 좀 보완하자면

설계자는 폴란드 사람 쿠르트 로트케겔

수혜자 및 주문자는 영국인 제임스 존스톤

존스톤이 1919년 사망하고는 그의 딸과 그 남편인 �터 부부에게

이양되고 이후 야마쥬 라는 일인에게 넘어 갔다가

다시 미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바로 존스톤 별장이다

 

뭐, 자세히 쓰자면 더 쓸 일이지만

좀 축약해서 이 건물에 대해 의미만을 부여하면

한국전쟁의 포화로 사라진 건물을 다시 짓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과 집을 짓겠다는 의도를 가진 몇의 무리들의

저의가 매우 심상찮다는 것이다

 

일제가 통감부 정치를 자행하던 때인 1905년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영국과의 관계성에 따른 수혜를 받은

존스톤의 행적과 그 용도를 의심해 봐야할 것이다

일제가 통감부 정치를 행하는 데에 철저히 협력관계에 있었던 영국

전 세계 56개국에 이르는 식민지를 건설한 나라와 이제 식민지 정복에

눈을 뜬 일본은 스승과 제자의 나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여하튼 일제의 비호 속에 건물은 완성을 보았고

외부 세계는 이 건물이 만국공원의 상징처럼 인식하여

랜드마크라는 흔한 별칭을 선사하게 되었다

 

건물이 멋지긴 하다

그러나 그 건물에는 영혼과 민족과 문화가 배제된 채

자의적 욕구와 허세 그리고 위압적 폭력구조로 일관돼 있다

건물이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지만

상생보다는 절대존재감의 노출 본능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

 

몇 차례 이 글에 단락이 생겨난 이유는 이렇다

첫 째. 시 정부 자문회의에 입회해서 나는 별 말을 전달할 수 없었다

남달우 박사의 역사인식을 외치는 표호와 손동혁 처장의 비판적 견제

그리고 필자,

필자가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은 두 분의 이해관계가 상통하기도 했거니와

나머지 일곱 분의 암묵적 공조가 우울하게 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독립운동에 몸 바쳐 평생의 재산으로 연오정을 희사한

조훈 선생의 유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자리를 헐고 존스톤 별장을 짓게다고 제안하는 시 정부 관계자의

주장에 아연실색을 하게 만든 요인도 있었다.

 

단락의 두 번째 요인은

시민의 힘을 결집해야할 필요를 느낀 몇 지기들과의 급 회의였다

박현주 선생의 발의로 전진삼 교수, 김송원 처장, 민운기 선생

임승관 대표 외 2명(지식인 연대, 유네스코)의 긴급 모임 때문이었다

 

필자가 이렇듯 상세한 이름을 거명한 연유는

그 만큼 의지가 충천해 있었고 결의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공고화 해야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틀 후 인천 건축문화재단의 성명서가 날리고...

11일 모임이 정해지는 등 일련의 행태가

막 조성될 무렵

뜻하지 않은 낭보를 듣게 된다

시 정부의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개발에 제동이 걸렸다는 기사가

인천일보에 뜬 것이다

'만국공원 창조적 복원사업 전면 유보'

 

이런 차에 본의 아니게 글들이 짜깁기가 되어 맥락이 우습게

연결되는 비루함이 생겨난 연유다

혹자는 경제 문제로 타개의 목적이 되기도 했고

묵어가는 공원의 활성 대책의 대안으로

6만 여평의 공원에 277억원을 들이 붓자는 계산도 있었고

케이블 카, 모노레일, 노면 전차 등의 계획이

만국공원이 살 길이라면서 주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많은 이야기가 물론 전개되어야 하겠지만

시 정부의 일방통행에 빛을 잃었다는 점 만으로도

그 간의 노고에 생기를 불어 넣게된 이유가 된 것 만큼은 분명하다

 

무조건적인 비판은 거부돼야 한다

철학적 판단의 부재 현상은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다

역사 인식의 개진과 과거에 대한 직시 그리고 현재

우리는 후대에 무엇인가를 선사해야할 합목적적인 방안들에 대한 논의를

끝없이 해내야만 한다

녹지 공간의 확보, 휴식과 교육, 경제적 효과

주민들의 삶 공간확보, 교통문제 등 총체적으로 접근해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적 논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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